ADVERTISEMENT

화약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모르는게 약이다. 알아서는 하루도 편한 마음으로 살 수가 없다. 서울이 그렇다는 얘기다. 알고 보면 모두 살아있는 화약고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대형 기름 「탱크」차가 서울의 한복판을 얼마든지 마음놓고 다니고 있다. 제한할 수도 없을 것이다.
도심지이든 주택지이든 어디든 주유소가 서 있기 때문이다. 유조차의 통행을 제한하려면 먼저 주유소의 설치에 대한 규정부터가 까다로와야 했다. 주유소를 아무데고 차려 놓을 수 있게 만든 이상 기름 「탱크」차의 통행만을 제한할 수야 없는 일일 것이다.
하기야 주유소가 기름저장 「탱크」만이라도 튼튼히 만들어 놓는다면 그래도 조금은 마음이 놓일 것이다. 그러나 땅속에 묻혀있는 「탱크」를 들여다 볼 수는 없다. 모르는 게 약인 것이다.
기름 파는 곳은 주유소만이 아니다. 골목 안에서 연탄만을 팔아오던 가게들이 요새는 기름까지 팔고 있다. 같은 연료「에너지」이니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닐지 모른다. 어떻게 기름을 저장하고 있는지도 그저 모르는 게 약일 뿐이다.
그리고 또 「프로판·개스」가 있다. 「개스」통과 곤로를 그냥 고무줄로 연결하는, 지극히도 원시적인 방법을 아무나 쓴다. 그러고도 파는 쪽이나 쓰는 쪽이나 마냥 태연하기만 하다. 그렇지만 알고 보면 가장 소름이 끼치는 일은 또 있다.
지난 28일 서울시 토목시험소에서 청계천 하수「개스」에 관한 종합보고서를 작성하였다.
여기 따르면 청계천과 욱천의 하수 「개스」는 아직은 자동 폭발 한계에는 이르지 않았지만 가연성 오염물질이 유입되면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수구나 개천을 복개하면 「메탄」「프로판」「벤젠」「에틸·벤젠」 등의 「개스」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를 위한 충분한 시설이 마련되어 있어야 했다. 그게 충분치 못하기 때문에 폭발의 위험이 생긴 것이다.
하기야 전혀 대책이 강구되지 않은 것도 아닌 모양이다.
청계천에 5개, 욱천에 1개 등 강제 배기장치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런게 제 구실을 다한다 해도 날로 늘어만가는 「개스」 발생량을 어쩔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배기장치들도 이름뿐인 모양이다. 우선 그 끝에 달려 있는 「팬」이 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얘기인즉 이웃 사람들이 「팬」이 뿜어내는 취기에 대해 항의하기 때문에 정지시켰다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당초에는 군데군데 「맨홀」이 있고, 철망으로 덮어두었었다 한다. 그것이 번번이 도난당하는 통에 이번에는 모두 「시멘트」뚜껑으로 막아버렸다. 이리하여 꽉 막힌 복개천의 둘레에서 2백 개소 가까운 업소들이 마냥 가연성 오염물질들을 하수구로 유출시키고 있다. 모르는 게 약일 때는 이미 지난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