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811)제31화 내가 아는 박헌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부책 확정>
처음 보는 채항석은 이마가 약간 벗어진 듯 하고 안경을 쓴 얼굴이 아주 이지적이고 얌전해 보였다. 그리고 그의 처 장병민은 조금 동그레 한 얼굴로서 피어나는 함박꽃같이 아름다웠다. 채부인은 나의 말 사투리를 듣더니 『김 선생님은 어디 경상도십니까?』하고 서울 말씨를 그만두고 경상도 사투리로 묻는 것이었다. 『네, 경상돕니다』하고 대답하니 『경상도 어디십니까』하고 또 묻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내가 대답하기 전에 정태식이 『그만, 그 정도만 알아두세요』하고 받아 고개를 흔들었다. 『아이구, 정 선생님도. 너무 경각성이 많으십니다. 제가 김 선생 고향을 알면 동네에 외고 다니고 싶습니까』하고 대꾸하는 것이 보통이 아니었다. 『경상도 사람들은 입이 찢어져도 안 할 말은 안해요』하며 채 부인은 정태식이 한 말하는데 두 말을 했다.
옆에 앉아있던 채항석은 『또 경상도 자랑 나오네』하며 자기 처의 입을 막으려했다. 『자랑은 무슨 자랑이요. 정말이지요, 남자는 경상도 남자가 제일이라오. 보시오, 김 선생은 생기발랄하여 천리라도 뛸 것 같지 않소? 당신은 10리도 못 뛸 것 같소』하며 입을 비쭉거렸다. 『부인! 부인말씀이 옳아요. 경상도 남자가 오셨으니 저녁 밥이나 좀 잘해주세요』하고 정태식이 나의 저녁밥까지 청하였다. 채 부인이 부엌에 나가서 다시 반찬을 만들어 가지고 밥상을 식모를 시켜 올리고 오는데 진수성찬이었다. 나는 이 집에 와서 경상도에서 태어난 것을 처음으로 기쁘게 생각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차와 과실을 먹고 난 뒤에 정태식과 나 두 사람만이 남아 앞으로의 사업진행과 「이론진」의 조직과 간부들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이론진」부장은 동경상과대학을 나와 해방직후에 서울대 상과대학교수로 있던 김창환이었다. 그는 경락의의 세계적 권위인 김봉환의 동생이다. 김봉환은 그 당시 명륜동에서 살았는데 동란 때 월북하여 지금은 북한에 있다. 김창환 이외에 동경제대를 나온 신진균, 경성제대를 나온 정일권, 그리고 정태식과 경성제대의 동창인 김해균도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미국의 「콜롬비아」대학을 나온 김모라는 사람도 있었다. 쟁쟁한 「인텔리」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나보다 학벌더 위고 공부도 많이 한 사람들이다.
이러한 우수한 간부들이 많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태식이 나를 자기의 부책으로 발탁한 이유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우수한 간부들이 많은데 이 동무들 중에서 부책을 뽑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하고 정태식의 진의를 물어봤다. 나의 말에 대해 정태식은 『김창환 같은 동무는 이론적으로는 대단히 우수한 동무요, 나의 후계자로 생각해본 일도 있었어요. 그러나 정치가로서. 정당의 지도자로서는 적당하지 못한 점이 있어요.
특히 정당이란 것은 정권을 잡기 위한 전투의 참모본부인데 그의 최고지휘부인 중앙상임위원회의 지도자가 되려면 최고수준의 이론, 지식 외에 용감성·치밀성·대담성·침착성, 그리고 고결한 품성을 갖춰 있어야 해요. 내가 동무를 나의 부책으로 뽑아 올린 것은 내가 동무와 친하여서가 아니예요. 동무도 아마 나와 친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으리라고 믿어요. 나는 체포당하면 끝장이요.
내가 없더라도 당을 지도해 나갈 든든한 후계자를 옳게 등용할 의무가 나에게 있어요. 김삼룡 동지도 지금 우리 당은 위기에 처해 있으니 과거의 파벌관계에 구애하지 말고 객관적으로 봐서 인물 본위로 간부를 등용하라고 나에게 지시하셨어요. 동무는 이점을 이해하여야 해요. 내 한사람의 개인감정으로 동무를 등용한 것은 절대 아니예요. 동무를 가장 중요한 지위에 등용한데 대해서는 박헌영 선생에 대하여서도 나는 당당히 나의 의견을 질술 할 수가 있어요.
간부의 등용, 인사문제, 이것은 가장 중요한 문제이에요. 이것 잘못하면 조직을 망치는 것이며 당을 망치는 거예요. 나의 간부등용에는 이제껏 잘못이 없다고 봐요. 김장한·권태섭 동무 모두가 당의 비밀을 고수하고 사형선고를 받았어요. 그리고 유축운 동무, 유 동무는 이 집을 알아요. 그래도 나는 유 동무를 믿기 때문에 이 집에서 피하지 않고 이 집을 아직 「아지트」로 쓰고 있어요. 나는 동무를 유축운 동무와 같이 믿기 때문에 동무가 만일 체포당하더라도 동무의 당성과 인간성을 믿고 이 「아지트」에서 움직이지 않을 작정이에요.』
그는 나의 어깨에 짐을 점점 더 무겁게 지우는 것이었다. 나의 어깨는 무거웠다. 내가 사람 구실을 하자면 첫째 절대로 체포당하지 않아야겠고, 둘째 만일 체포당하는 경우에는 내 스스로 내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다고 마음을 먹었다.
앞으로의 나의 사업과 정태식과의 연락은 낮에 기관지 부책 변귀현, 이론진 부하 김창환, 동부책 신진균 등 기타 필요한 간부들과 만나 임무를 지시하고 보고를 받아 가지고 밤에 정태식의 「아지트」에 가서 그날의 보고를 하고 내일의 일의 지시를 받고 저녁밥을 같이 먹고 나의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밤사이에 서로 사고가 발생할 경우에 대비하여 상오9시에 정태식의 비서와 나의 비서가 돈암동 삼선교에서 안암동으로 흐르는 개울가를 거닐면서 서로 얼굴만 확인하는 것이었다. 9시에 서로 얼굴을 확인하면 밤사이에 사고가 없는 것이고 한쪽이 나오지 않으면 그쪽이 사고난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특별히 긴급히 전할 말이 있으면 손을 올려 머리를 긁으면 다리를 건너가서 이야기를 하게 되어 있었다. 정태식의 비서는 채항석의 생질인 서울대 문리대학생이었다. <계속><제자 박갑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