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닮은 얼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분수대자가 공항에 나갈 때면 공항직원이 으례 영어로 말을 건넨다. 일본인으로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일본관광객이 자주 드나드는 「호텔」이나 「쇼핑·센터」에 들르면 으례 일본인으로 오인 받곤 한다.
일본에 가서도 마찬가지다. 말만 오래 하지 않으면 어디서나 일본인으로 통한다. 일본인과 함께 술집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그 집「웨이트리스」는 분수대자를 일본인으로 알고, 진짜 일본인을 오히려 한국인으로 여겼다.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였다.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흔히 한국인과 일본인의 전형적인 판은 완연히 다른 것으로 되어 있으니 말이다.
더욱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은 누구나가 분수대자를 보고 일본인을 닮았다고 여기는 사실이다. 곧 아무도 일본인들이 분수대자를 닮았다고는 말하지 않으니 말이다. 바로 이런데 한·일 양국 교섭사에 대한 지금까지의 이지러진 풀이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도 있겠다.
「토인비」는 그 대저『역사의 연구』에서 문화교류의「십자로」와「막힌 길」에 관해서 얘기한 적이 있다. 그에 의하면 서「아시아」에서 일어난 문명이 여러 지역으로 퍼져 나갈 때, 지리적 조건에 의해서「십자로」가 된 곳과 「막힌 길」이 된 곳이 있다는 것이다.
「십자로」란 「아프가니스탄」처럼 길이 사방으로 통하여 문명이 사방에서 들어오고 또 사방으로 빠져나가는 곳이다. 그리고 「막힌 길」이란 일본이나 영국처럼 여러 곳의 문명의 혜택을 받으면서도 그것들을 다른 지역으로 옮겨주지 못하는 곳을 말한다.
「토인비」의 이론에 의한다면 이런「막힌 길」의 지역에서는 묵은 요소들이 거의 그대로 남은 채로 새 요소들과 겹쳐나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일본의 경우에도 그 문화의 원류에는 여러 가지「루트」가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루트」를 학자들은 흔히 다섯 가지로 추정하고 있다. 곧 「시베리아」「북해도」를 거쳐 동일본에 들어간 북방「루트」, 한국에서 북구주에 상륙한 「루트」, 중국동해안 「루트」, 충승「루트」, 그리고 남양「루트」등이다.
이중에서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던 것이 북방「루트」였다. 전전에 나온 일본의 백과사전에도 일본인의 얼굴의 원형을 더듬는데 제일 먼저「아이누」계를 들고 있었다.
한국「루트」는 그 동안 거의 미미한 것으로 여겼었다. 물론 일본학계가 의식적으로 과소평가 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최근에 이르러 비조 시대의 고송총 고분벽화 발굴과 함께 한국「루트」가 크게 중요시되기 시작했다. 일본문화의 원류를 이룬 것으로 추정되는 다섯「루트」중에서 과연 한국「루트」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지를 새로 파헤쳐 나가야할 때가 온 것도 같다.
오늘부터 본지에 새로 연재되는 <일본에 심은 한국>도 그런 뜻에서 매우 중요한 뜻을 안고 있다. 어쩌면 『일본인을 닮은』분수대자의 수수께끼도 풀려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