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기고

새로운 남북관계를 위한 여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박근혜
대한민국 대통령

2013년 2월 12일, 북한은 한국의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3차 핵실험을 감행하였다.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에서는 신뢰를 쌓아 새로운 한반도를 만들자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새 정부 대북정책의 핵심 과제로 채택하고 있었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하지만 나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기조가 유지될 것을 분명히 하였다. 신뢰프로세스는 처음 구상할 때부터 북한의 도발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도발에 대한 타협과 보상이라는 악순환을 끊자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과거 북한의 선의에만 의존하던 유화정책과 압박 일변도의 강경정책이 보여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강력한 억지력을 기초로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는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하되,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고자 한다면 확실한 기회와 지원을 제공하여 한반도에 지속 가능한 평화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은 군사적 위협과 비방을 가속화하였다. 4월 들어 북한은 마침내 남북 교류협력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던 개성공단에 대해 일방적 출입차단과 북한 근로자 철수라는 극단적인 조치까지 단행하였다.

개성공단이 멈춘 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물밑 접촉 등을 통해 북한에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하지만 과거 그러한 접근이 많은 부작용을 가져왔기에, 나는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대화를 제의하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나는 북한의 문제점은 확실히 지적함과 동시에, 대화를 통해 작은 일부터 협력하고 약속을 지켜야 신뢰가 쌓일 수 있다는 점을 북한에 반복적으로 강조하였다. 아울러 국제사회에도 신뢰프로세스에 기초한 우리 정책의 진정성과 필요성을 설명하고, 지지를 확보하였다.

북한은 결국 7월 중순부터 대화의 장으로 나왔고, 한 달 후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에 합의하였다. 이에 개성공단의 공동 관리를 위한 사무처가 개성에 개설되었고, 남북한 당국자가 매일 접촉을 하게 되었다. 지난 5년간 남북 간에 대화가 사실상 단절되었고, 새 정부 출범 초기 북한의 위기 조성이 최고조에 달했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이는 작지만 의미 있는 진전이었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실질적 정상화를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북한은 개성공단의 실질적 정상화를 위해 필수적인 통행, 통신, 통관 등에 대한 후속대화에 소극적이다. 더구나 이산가족 상봉에 관한 합의도 예정된 행사 일을 며칠 앞두고 일방적으로 깨서 오랜 세월을 기다려온 이산가족들의 가슴에 상처를 주었으며, 이후 대남비방과 위협을 재개하였다. 최근 북한의 2인자로 알려진 장성택 숙청 이후 북한의 상황에 대해서도 우리 국민과 국제사회는 우려하고 있다. 남북관계가 더욱 예측 불가능한 상태에 놓여 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들은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지난 10개월 동안 우리 정부는 국민의 눈높이와 국제규범에 맞는 대북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앞으로도 이러한 원칙을 지키며,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대북정책을 추진할 것이다.

첫째, 평화와 통일의 기반을 조성할 것이다. 우선 평화를 지키기 위해 강력한 억지력을 유지할 것이다. 튼튼한 안보야말로 진정한 평화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대화와 교류협력을 통해 지속 가능한 평화를 만들어 갈 것이다. 그래야 한민족 모두의 삶의 질이 높아지고 보다 행복한 통일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국제사회와의 협력도 더욱 돈독히 할 것이다. 통일은 분명 우리 민족의 문제이나, 주변국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며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야 한다.

둘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노력 할 것이다. 남북 간의 깊은 불신의 골을 메우기 위해, 상호존중의 자세로 신중하게 협의하고,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는 대화의 관행을 만들어 갈 것이다.

남북대화와 협력의 폭을 넓히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는 한편, 인도주의 차원에서 대북 인도적 지원을 투명하게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다. 아울러 이산가족 상봉, 국군포로 및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아울러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정책의 투명성을 높일 것이다. 남북관계의 특성상 관련 사항을 모두 공개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나, 국민들에게 정책 추진 과정을 정확하게 알리고, 여론의 견고한 지지를 바탕으로 대북정책의 효율성을 높일 것이다.

셋째, 북한의 비핵화를 통해 한반도 및 동북아의 공동발전을 추구할 것이다.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며 우리와 신뢰의 파트너십을 구축할 때, 남북관계가 제대로 발전할 수 있다.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확실한 의지와 실질적 행동을 보여준다면 한국은 앞장서서 국제사회의 협력을 이끌어 내며 북한의 경제개발을 적극 지원할 것이다. 나아가 한반도가 동북아 국가들과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최근 북한이 경제개발 특구 설치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으나 지금과 같이 핵개발을 지속한다면 한국은 물론 세계 어느 나라도 북한에 투자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진정 북한 주민들을 걱정한다면 실현 불가능한 핵·경제 병진 노선을 버려야 한다. 대신 국제기준을 따르며 행동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 이웃 나라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신뢰의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북한을 국제사회로 끌어들이는 것은 우리 대외정책의 중요한 과제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이 지역의 끊어진 네트워크를 연결하고 교류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해 유라시아를 하나의 대륙으로 만들고, 이를 동북아 평화협력과 연계시키자는 구상을 제안하였다. 유라시아 이니시어티브가 성공적으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유라시아와 태평양을 연결하는 관문인 한반도에서부터 불신의 장벽을 없애야 한다.

DMZ 세계평화공원 사업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한반도를 가로막고 있는 DMZ에서부터 대륙과 해양 국가들이 남북한과 함께 신뢰와 협력의 관행을 쌓고, 이를 확산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한반도는 유라시아와 동북아 평화의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Project Syndicate

 (※이 글은 중앙일보가 한국 내 독점 전재 계약을 맺고 있는 프로젝트 신디케이트를 통해 전 세계에 배포됐습니다.)

박근혜 대한민국 대통령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