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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백질 전쟁』 선전 포고|미 농산물 금수 조처의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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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의 농산물 수출 금지 조치는 어쩌면 전세계에 「단백질 전쟁」을 유발시킬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이번 조치가 바로 그 선전 포고인지도 모른다. 한국·일본 등은 아직도 71년10월의 『섬유 「쇼크」』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으며 EC (구주공동체) 각국은 그저께까지 만해도 농산물에 대한 관세 장벽을 낮추라는 미국의 압력에 도도한 자세를 취해왔었다.
이러한 마당에 「닉슨」은 미국 자신이 해외에 뿌려놓은 「달러」화를 반병신으로 만든 것이다. 미국 돈으로 미국의 고철이나 식료품·사료를 살 수 없다는 얘기는 금 태환 정지보다도 훨씬 과격한 조치이기 때문이다.

<반 병신 돼버린 달러화>
현재 외국에서 갖고 있는 「달러」화는 약 2천억 「달러」에 이른다. 애초에 이들이 미국 돈을 알뜰히 긁어모았던 것은 그 돈만 있으면 언제든지 「포트·녹스」의 미 정부 보유 금과 맞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데 71년8월 「닉슨」은 금과 바꿔줄 수 없다고 선언한데 이어 이번에는 녹슨 쇳덩이나콩·강냉이 따위와도 못 바꾸겠다고 나선 셈이다. 「달러」가 반병신이 되었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서였다.
따라서 EC나 일본 등 「달러」화를 쌓아 놓고 있는 나라들은 이번 조치를 「콩 태환 정지」라고 분통을 터뜨린다.
물론 미국 측에도 할말은 있다. 작년의 경우 물가 상승율이 3% 정도였던 것이 올해는 9%로 예상되고 있고 특히 식료품 값은 이미 15 %나 뛰어 올랐다. 만약 이대로 수출을 방관하다간 앞으로 얼마나 더 치솟을지 알 수 없을 지경인 것이다. 미국 정부는 콩 같은 사료 값을 포함한 농산물 값의 급등은 외국 수요의 급증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농산물 가격 상승의 큰 책임의 두 가지는 「닉슨」 대통령에게로 돌아간다.

<달러, 2년간 27% 하락>
「닉슨」은 「브레즈네프」와의 밀월 선물로 지난해 1천8백만t 10억 「달러」어치의 곡물을 소련에 팔았다.
그 중에 콩·옥수수 등이 큰 몫을 차지한 것은 물론이다.
외국 시장과 국내 시장의 수급 관계를 무시한 그러한 흥정은 지금 맹렬한 비난을 받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사설은 「닉슨」 행정부의 콩 수출 금지 조치는 무능의 노정』이라고 규탄했다.
결국 한국·일본·유럽 같은 나라들은 미국·소련의 「초강대국 흥정」의 제물이 되고 있다.
72년10월 대통령 선거 때 「닉슨」 후보가 농부들에게 쓴 선심 공세도 농산물 가격 인상의 큰 원인이다.
「닉슨」은 정부 보조를 받는 휴경 면적을 늘려 농부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또 72년 농가 소득은 19 %나 올랐다.
그밖에 세째 이유로는 72년 전세계를 휩쓴 흉작 현상이다.
특히 소련의 경우 3천만t의 곡물을 수입해야 했는데 실제로 농산물을 수출할 수 있었던 나라는 미국과 「캐나다」 정도였다.
이런 판국에 미·중공 화해의 결과로 중공까지 미국 농산물 시장의 「새로운 고객」으로 등장하고 보니 농산물 가격은 계속 뛰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다가 「달러」 값이 하락, 크게 한몫을 거들었다.
지난 2년 동안 「달러」 가치는 27%나 떨어졌다.
따라서 콩·고철 같은 미국 상품은 외국 구매자에게는 한층 싸게 되었고 미국 상품에 대한 외국 수요가 격증하니 이 나라의 「인플레」는 더욱 자극을 받게 됐다.
농산물 수출 통제는 미국이 국제 수지의 개선을 당분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통상 협상은 결렬 난면>
따라서 미국과 구공시 간의 통상·통화 협상은 일단 결렬을 면치 못할 상태이다.
미국은 지금 두개의 얼굴을 내밀고 있다. 하나는 국제 수지 균형을 희생하고 「달러」 가치의 계속 하락을 감수하고라도 국내 「인플레」를 해결하여 보려는 미국이고, 다른 하나는 우방 국가들에 정치적 압력을 넣어서라도 수출을 확대하고 수입을 억제하여 만성적인 국제수지의 적자를 개선하고 「달러」 가치를 유지하려는 미국이다. 「유럽」 공동 시장과 일본 등은 지금 「어떤 미국」을 상대로 협상을 해야 할지 어리둥절하고 있다. 「단백질 전쟁」 이 과연 폭발하고 말 것인지는 10월부터 시작되는 미국의 농산물 추수 및 8월12일까지 발표될 「닉슨」의 제4단계 경제 정책 같은데 달렸다.
11일 (한국 시간) 미 농무성이 발표한 금년도 농작의 예상을 보면 앞으로 세계 각국이 미국에서 사들일 수 있는 단백질의 분량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콩의 경우 금년엔 풍작으로 15억 「부셸」을 수확할 것으로 보인다. 거기다 「브라질」 같은 나라가 콩 생산을 크게 늘린 결과 내년에는 4백80만t을 생산 할 것 같다. 그래서 일본은 1974년부터 「브라질」에서 2백50만t의 콩을 수입 할 예정이다.
지금 당장에는 「닉슨」이 행정부의 농산물 금수로 「아시아」 「유럽」의 우방 국가들만이 「쇼크」를 받고 있지만 조만간 미국 스스로 그 대가를 정치적으로 치를 가능성이 크다.

<잉여 농산물 지배 끝나>
첫째, 이번 사태는 잉여 식품을 통한 미국의 세계 지배가 끝장 났음을 만방에 선포한 것이다. 가령 미국이 인도·「뱅글라데쉬」 같은 나라와 관계를 개선하려고 할 때 잉여 식품 보따리 말고 다른 어떤 수단을 가질 것인가 의문이다.
둘째, 이번 기회에 소련과 중공 역시 미국의 농산물에만 지나치게 의존할 때의 위험을 터득할는지도 모른다.
「발트하임」「유엔」 사무총장은 「유엔」 예산을 「달러」 아닌 다른 통화로 짜야겠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금은 고사하고 콩이나 목화씨조차 사지 못하는 「달러」의 위신과 함께 미국의 국제적 지위를 현실적으로 평가한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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