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비료의 현금 판매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정부는 올 가을 추석 수매 때부터 비료의 외상 판매제 및 양비 교환 제도를 없앨 것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가 이러한 방침을 검토하게 된 이유는 농가 소득이 고미가 정책 등으로 크게 향상되어 외상 판매제나 양비 교환 제도가 없어도 별로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라 한다.
농가의 소득이 정부가 추정한대로 높아져서 이를 실행해도 좋은 것이라면 그보다 다행한 일은 없을 것이나 과연 그럴 것이냐에 대해서는 몇가지 고려해야 할 점이 있을 것 같다.
우선 농가 소득이 통계상으로 향상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상대적인 것이지 절대적으로 항상 현금을 보유 할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현금 보유 여력이 없다는 전래의 농촌 경제 사정이 분명히 호전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양비 교환 제도나 외상 판매 제도의 폐지가 농촌 현실에 부합 한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시기 상조가 될 것이다. 무리하게 외상 판매와 양비 교환 제도의 폐지를 추진하게되면 농촌 고리채가 재등장할 소지가 충분히 있다.
다음으로 농가의 평균 소득이 향상되었다고 해도 농가의 경지 규모별 구성으로 보아 농가의 7할 정도를 점하고 있는 1정보 미만 농가는 여전히 궁상에서 벗어났다고는 볼 수 없다.
이들이 그나마 영농에 지장없이 비료를 사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니라 외상으로 비료를 공급해 준데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영세농들에 현금으로 비료를 판매하는 것은 커다란 부담이라 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를 강행하는 경우 비료 사용량이 줄거나 아니면 고리채에 의존해야 할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므로 7할 정도의 농민에게는 비료의 현금 판매가 주는 경제적 압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또 근자의 물가 정세로 보아 농산물 가격 통제를 풀 가능성은 매우 적은 반면, 일반 상품 가격은 알게 모르게 오르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주요 상품 가격의 통제가 농촌에서의 산매 가격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규제되기는 힘들다.
또 주요 상품 가격의 통제가 철저히 이뤄진다 하더라도 통제되는 상품 수와 통제되지 않는 상품 수를 비교한다면 전자는 극소수에 불과한 것도 숨길 수 없다. 사리가 이러하다면 농산물 가격의 실효 「패리티」를 충분히 고려해서 고수가 정책을 앞으로도 계속 견지한다는 방침이 확실히 서야만 농가의 실질 소득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물가 정세와 분리해서 고수가 정책을 계속 밀고 나간다는 방침을 전제로 하지 않는 한 비료의 현금 판매제를 구상하는 전제라 할 농가의 실질 소득 증대에도 문제점이 남아있다.
비료의 외상 판매 및 양비 교환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통화량이 증가하는 부담이 크다는 사실 때문에 현금 판매제를 당국이 검토하는 것으로 추측되는 것이나 농가 경제에 커다란 부담을 줌으로써 농민의 증산 의욕에 타격을 주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평균 농가 소득에 기준을 두고서 이 문제를 검토할 것이 아니라, 농가 규모별로 경제력을 측정해서 이 문제의 득실을 평가해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