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술 너울 쓰고 잿밥에만 관심|「치료비 횡령」 서울시 영등포병원…그 독직의 수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서울 시립 영등포병원 치료비 횡령 사건은 일부 의료 종사원들이 환자의 진료보다는 자신의 수입을 올리는데 열중했다는 본보기를 보인 것이다.
특히 무료 환자를 취급하는 국·공립 병원에서 제도상의 헛점을 악용하여 진료비 등을 가로채고 있다는 것이 이번에 증명된 셈이다. 서울 지검 영등포지청 안동수 검사는 지난 2년 동안 시립 영등포병원에서만 1천만원 이상의 진료비가 횡령됐다고 보고 있으며 서울시 보사 당국자는 자체 조사에서 1백20만원 정도가 시 금고에 입금되지 않았다고 시인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인술의 너울 속에 배를 불려온 의료 종사원을 응징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에서 밝혀진 횡령수법은 가지가지. ▲유료 환자를 무료 환자로 꾸며 진료비 등 전액을 가로채거나 ▲의료 종사원의 친척·친지를 무료 치료하고 사례금을 받는 수법 ▲특별히 좋은 약이라고 속여 정가 이상의 약 값을 받아 차액을 뜯어내거나 ▲단골 약방을 소개해주고 약방으로부터 사례금을 받아내며 ▲간호원이 환자 가족으로부터 수고비를 받고 심지어는 ▲별도로 자기 개인 병원을 개업하고 있는 일부 의사들은 환자를 자기 병원으로 빼돌리는 경우도 있다.
지난 3월6일 맹장염 수술을 받은 심모양 (20·영등포구 신길동 303)은 모두 5만6천원의 치료비를 냈으나 병원 측은 「무료 환자」로 처리, 영수증을 떼 주지 않았다. 시립 병원에서 취급할 수 있는 무료 환자는 요구호 대상의 극빈자이나 진료비를 떼먹기 위해 극빈자를 조작하고 있다.
지난 72년8월1일 연탄「개스」에 중독, 입원한 장모씨 (48·관악구 신림동 86의 124)는 입원 보증금 1만원, 치료비 5만원 등 6만원을 수납 창구에 지불했으나 입원 수납 대장에는 3만2천원만이 입금되었고 나머지 2만8천원은 중간에서 없어졌다.
지난 72년6월2일 급성장염으로 입원한 이모씨 (23·영등포구 영1동 620)는 입원비 2만원, 치료비 3천7백원 등 2만3천7백원을 수납 창구에 지불했으나 영수증을 받지 못했다는 것.
이씨의 경우 병원 측에선 「무료 환자」로 처리, 3천9백원만 수입 전표에 올린 뒤 1만9천8백원은 빼들려 버렸다.
지난 72년4월7일 제왕절개 수술을 받은 임모씨 (29·여·관악구 대방동 445의 4)는 입원비 2만원, 치료비 7만원 등 모두 9만원을 수납 창구에 지불했으나 임원 수납 대장에는 5만9천원만 입금된 것으로 되어 있고 나머지 3만1천원은 행방이 묘연해진 상태이다.
더구나 임씨는 수술 직전 마취비 7천원을 마취 의사에게 별도로 직접 지불하고 마취를 받았다는 것이다.
지난 72년8월26일 임모씨 (46·여·영등포구 양평동 2가 37)는 자궁 혹 제거 수술을 받기 위해 3일간 입원, 5만원을 담당의사 P씨에게 직접 지불했으나 수납 대장에는 「무료 환자」로 처리되었고 돈은 입금되지 않았다.
당시 8·19 수해 뒤 서울시에서 내린 『수재민은 무료 치료하라』는 지시를 병원 측에서 악용한 것.
검찰은 또한 이 병원에서 지난 72년 1년 동안 치료한 「무료 환자」 2백명 중 1백92명이 소재 불명자 임도 밝혀냈다.
무료 환자의 경우 동에서 발부한 극빈자 증명과 주민등록초본이 환자 「카드」에 첨부되어야 함에도 1백92명 중 반수 이상이 첨부되지 않았고 첨부된 것도 주소가 명확히 쓰여 있는 것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첫아들을 낳은 강모씨 (27·영등포구 가리봉동 157)는 담당 간호원 P양으로부터 괜한 시달림을 받았다. 가족이 찾아오면 눈살을 찌푸리며 야간에는 불러도 찾아오지 않는 등 투정을 부렸으나 현금 3천원을 쥐어주자 태도가 싹 변했다. 기대 이상의 친절 속에 산후 조리를 할 수 있었다는 것. 강씨는 마치 접객 업소 종업원에게 「팁」을 준 것처럼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고.
지난 4월15일 왼쪽다리 골절상으로 입원한 신모씨 (45·영등포구 양평동 3가 40)는 수술 후 담당 의사 C씨로부터 회복이 빨라지는 약이 있다는 귀띔을 받았다. 신씨는 C씨에게 6천원을 주어 약을 샀으나 정가 1천5백원짜리였다. 일부 병원의 치료비 횡령 사건은 흔히 의료 종사원이 박봉을 받고 있다는 핑계 속에서 저질러지기 쉽다.
의사들은 일류 병원이 아니라는 열등 의식과 시립 병원의 환자가 이른바 상류층이 아니라는 멸시 감정이 묘하게 서로 작용, 불친절한 고자세로 환자 위에 군림하면서 악랄한 부정마저 일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정일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