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신화의 성격·위치|신문협 주관 한국사 세미나 김열규 교수 주제 내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신화는 인간 생활의 원형적 모습을 담고 있다. 각 민족에 고유한 신화는 그 민족이 문화를 갖기 시작하는 최초의 상황을 설명해준다. 민족 문화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또 신화는 역사적 중요성을 갖는다. 「한국의 고대 신화」를 다룬 신문 협회 주관한 국사 연구 위원회 제8회 고대사 「세미나」는 이같이 중요한 뜻을 갖는 한국 고대 신화의 성격을 정리하고 위치를 정립하기 위한 노력으로 평가된다. 2일 동아일보 회의실 (여의도)에서 가진 이 「세미나」에서는 김열규 교수 (서강대)가 주제 발표를 맡고 김원룡 (서울대문리대) 천관우 (언론인) 황패강 (단국대) 이두현 (서울대사대) 장덕순 (서울대문리대) 장수근 (문화재위원) 김정배 (고대) 교수 등이 토론에 나섰다. 다음은 김 교수의 주제와 토론 요지다.
신성현시로 시작되는 한국 신화는 북방아 대륙을 회고하면서 일본 신화를 내다보고 있다. 그 현시는 왕의 탄생과 때를 같이하여 나타난다.
즉 한국 신화는 신성 왕권을 위한 전승이다. 『삼국유사』 혁거세조에는 신라의 육씨조가 모두 하늘에서 산으로 내린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씨조 전승 신화의 원형으로 후세의 족보에도 그 자취를 남기게 된다. 신성현시에는 제전이 수반됐다. 『가락국기』에서 보는 것처럼 신성의 현시를 인간들은 주사와 노래와 춤으로 접한 것이다. 해모수동명 우리의 신화에서도 주술적 비상이란 공통성이 있다.
한국 신화는 이같이 신성현시를 접하는 제전, 즉 주술상관물이란 성격을 띠고 있다. 탄생·결혼·입사·취임·죽음 등 통과제의의 주술 표현이 한국 신화라는 단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또 한국 신화는 신성현시의 신화이면서도 그 신성현시가 역사적인 것으로 믿어진다.
혁거세·단군 등의 신화가 다같이 시간성을 갖고 있으며 신화 전승자에게 신성현시는 구체성 있는, 혹은 신빙성 있는 현실로서 수용되고 있다는 점이 초역사적인 다른 민족들의 신화와 구별된다. 이점에서 한국 신화는 그냥 허구에 그칠 수도, 또 모두 역사적 사실일 수도 없는 성격을 갖는다. 적어도 삼국은 그 초창기에 신화를 회고하면서 역사를 구축해간 것이다.
한국 신화는 또 신성현시의 제전 속에서 그 원형이 북방아 대륙에서 온 것임을 반증하고 있다. 이것은 민족의 이동 무대를 회고할 때 재론의 여지가 없다. 유리가 모후의 가르침을 따라 양마, 탈주하는 신화라든지, 온달이 평강공주의 지시로 양마술을 익히는 것은 북방아 기마족의 신화를 연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혁거세 신화에서도 북방아 대륙에서의 「샤먼」의 장례를 연상하는 귀절은 이런 생각을 더욱 확실하게 해준다.
이러한 사실은 한국 신화의 대표적 성격의 하나인 통과제의에서도 볼 수 있다. 「요사」 의 재생의에는 왕이 기목 (둥치가 둘로 갈라진 나무)밑을 3번 통과하고 동자가 7번 통과하면서 왕은 죽고 동자가 새로운 왕으로 탄생한다는 전승 기록이 있다. 사타구니사이를 기어나가게 함으로써 재생의 뜻을 찾는 한국 신화, 특히 3, 7 등 기수가 갖는 의미를 탄생과 결부시킨 한국 신화가 여기서 유래되었다는 사설을 주목해야 한다.
왕이 동자로 재생한다는 것 또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혁거세·김한지·수로 등이 한결같이 동자거서간 즉 동자왕인 것이다.
이같이 북방아 대륙을 회고하는 한국 신화는 또 일본 신화의 원형으로 된 것이다. 신라의 씨족 전승은 일본 신화의 원형이 됐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일본인들이 한국에 대해 신화에 있어서 우위를 내세우는 신공 전승마저도 그것의 원형이 한국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신라 정벌을 앞둔 신공이 돌을 허리띠 속에 품어 태아의 태동을 막았다는 부분이 있다. 동명왕의 신화 속에 이미 돌이 출산과 관련된 주술적 구실을 했다는 신화가 한국에 있었던 것이다.

<세미나 토론 내용>한국 신화는 풍요 기원한 흔적 뚜렷|제주도 신화엔 남방적 요소 엿보여
먼저 장수근씨는 민속학적 입장에서 『한국의 신화는 농경 국가로서의 풍요를 기원하는 성격이 짙게 나타나 있다』고 보았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부낙제나 계림의 김한지 신화에서 이같은 성격을 볼 수 있으며 후기에 왕궁 신화로 승화되었다는 것이다.
신성현시를 곧 신성 왕권에 결부시키는 김열규 교수의 주장에 대해서는 황패강 교수는 이것을 고대인의 인간 존재에 대한 원초적 사상으로 아울러 파악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신화의 원형을 북방아 대륙에서 찾는 획일화에 대해서도 참가자들은 대체로 동의하지만 많은 문젯점을 지적했다.
이두현 교수는 제주도의 많은 신화에서 남방적인 요소를 볼 수 있다고 했고 장수근씨는 난생 신화의 원형이 남방에 더 많다고 했다. 주제 발표에서 북방을 회고하는 큰 요인으로 통과제의를 들고 있지만 이것은 세계의 대부분의 신화에서 볼 수 있다고 황 교수는 설명했다.
이것은 오히려 해모수 신화에서 부여 (동북아)가 무대가 되어 여기서 고구려, 백제, 그리고 신라가 연유된다는 신화의 역사성을 논리 전개의 출발점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일본 신화의 원형이된 것이 한국 신화라는 논리도 돌에 관한 전설이나 씨조 신화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부족하다는 점을 김원룡 교수는 지적했다. 이점에 대해서는 김정배 교수도 뜻을 같이했다.
오히려 장덕순 교수의 설명처럼 일본 신화를 관류하는 특징은 한국을 이상의 나라로 보고 풍성한 마음의 고향으로 여겨왔다는 점이 더욱 설득력 있는 논리가 된다는 것이다.
어쨌든 일본 신화, 그중에서도 지배층과 왕실에 관한 신화의 대부분이 한국적 원형을 갖고 있다는 점에 참가자들은 동의하고, 따라서 한국 신화가 일본 신화의 원형 구실을 하고 있다는 점에는 참가자들이 모두 이론이 없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