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첫 중공방문 한국인 나순옥 여사 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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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목탁소리 안나는 절간>
고적은 어느 것이나 깨끗이 손질이 된 채 보존되고 있어 옛 문화의 향기를 고이 간직하려는 후손들의 정성을 엿볼 수 있었다.
지난 1천년동안 두번이나 수도였던 고도 항주가 대표적인 예.
서호의 호반엔 3개의 수중 탑과 들로 만든 누각이 옛날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었고 고찰 또한 세윌의 뭉장울 자랑하고 있었다.
절간은 중들이 모두 일을 나갔는지? 목탁소리가 끊겨 있었지만 부처님이 모셔져있고 촛대도 놓여있어 빈 절 같지가 않았다. 새로 「페인트」칠까지 말끔히 해놓고 붐비는 구경꾼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못 안 쓴 통나무 건축들>
절은 서호에서 조금 더 가니까 잇따라 나타났다. 하나 같이 두 사람이 팔을 벌려도 안을수 없는 아름드리 통나무 기둥으로 지은 것이었다. 안내원의 설명에 의하면 상해·북경 등 왕이 살던 데는 모두 이런 통나무 기둥에 못을 안 썼다고.
커대한 암불 등 진귀한 고적이 고스란히 보존돼 서호 구경은 하루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다. 종일 「요트」를 몰며 구경을 서둘렀지만 몇 군데 보지도 않아 하루가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6월2일과 5일 이틀에 걸쳐 구경을 다녀야했다.
항주는 중공혁명 중 유명한 군사요충이었다지만 개혁의 거센 물결은 간곳 없고 오로지 옛 냄새만을 짙게 내뿜고 있었다.
광동에서 배경까지 가는 동안 우리는 각 도시에서 「쇼핑」을하며 중공의 물건을 살펴보았다.

<길거리서 야채등 팔아>
맨 먼저 「쇼핑」을 한곳은 광동 인민공사 부근의 시장. 나는 남편과 함께 시장을 들며 베갯잇과 한약을 샀다.
시장의 식료품「코너」엔 가게도 있지만 우리처럼 길거리에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배추를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채 팔고있는 모습도 보였다.
배추대신 생선을 쌓아놓거나 고기를 매달아 놓은 곳도 있었다.
야채와 생선은 남아도는 것 같았다. 안내원에 의하면 『상인들은 장판의 물건을 그대로 덮어두고 집에 들어가 자지만 도둑은 절대로 없다』는 것이다.

<외인상점에 물건가득>
도둑이라고는 없다는 말인데 벌이 엄해서 그런지 알수가 없었다.
항주에서는 벽장식품·보석점·공예품점을 각각 돌아보았다.
그러나 자기네들만이 이용하는 이들 상점에서는 살 것이 별로 없어 「쇼핑」은 주로 외국인 전용상점에서 했다.
그중 북경의 외국인 전용상점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보온병·밥그릇·숟가락·젓가락·털「오버」를 비롯한 생활 필수품으로부터 「다이어」·진주 등 사치품에 이르기까지 온갖 상품이 4층 상점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옛날 족자와 비취도 많이 진열돼 있었다.

<왕 목걸이 한개 40달러>
비취 중 어떤 것은 얼마나 맑은지 꼭 유리알 같았으며 최고 1만「달러」짜리까지 있었다.
비취는 모두 옛날 것이지 요즘 만들어 낸 것 같지는 않았다.
한마디로 좀 좋다는 것은 기가 막히게 값이 비싸서 탈이지 내가 거기 산다고 해도 불편할 것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나는 남편이 『얼마든지 사라』고 권해 옛날 왕으로 만든 목걸이·「브로치」·팔찌·반지 등 귀금속과 견직물을 샀다.
목걸이는 40「달러」짜리이고 옥「브로치」는 2백「달러」짜리이다.
주단도 기가 막히게 좋아 사고 싶었으나 항공편 송료 때문에 단념하고 말았다.

<항공료 비싸 주단 못 사>
북경에서 광동까지 비행기로 갖고 오는데 운임이 ㎏당3「달러」50「센트」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크기 때문.
미국까지 보내줄 수 없느냐고도 물어봤으나 수출은 안 하는지 그럴 수가 없다고 해서 끝내 가져오지 못했다.
그밖에 밥그릇과 양단도 훌륭했다.
그리고 진열된 상품은 내가보기에 모두 중공 산인 것 같았다.
한편 광속에서 항주로 가는 비행기 안서 나온 「젤리」 및 알사탕과 껌은 맛이 그저 그랬으며, 우리 나라나 미국 것보다 질이 낮아 보였다. 껌은 은종이와 겉 종이로 싼 것이 우리 것과 같았다. <계속><조동오특파원 긴급입수-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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