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성과 「핵전쟁방지선언」-미·소 정상회담 공동성명의 저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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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워싱턴=김영희특파원】1주일 동안의 미·소 정상회담에서 두 수뇌와 각료들은 공동성명까지 합쳐 모두 열개의 합의문서에 서명했다. 언뜻 보기에 풍성한 수확이 있었던 듯도 하다.
그러나 농업·운수·해양탐사·조세·문화교류·항공동의 쌍무협정은 이번 회담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지난해 정상회답을 전후해서 나온 것이고 공학용 전략무기제한과 핵전쟁방지 선언은 이 자체가 구체적인 것이 아니라 앞으로 『합의를 보자는데 합의한 문서』일뿐이다.
공동성명 역시 『양국은 이번 토의가 두 나라 관계의 건설적 발전에 이정표가 된다고 확신한다. 양국관계를 최대한으로 안정시키고 양 국민의 친선과 협조의 발전이 세계평화를 위한 항구적인 요소로 다듬어지는 주요한 조처를 취하기로 결정했다』는 귀절로 이런 판단을 뒷받침한다.
특히 이번 회담의 성과가 당장 손에 잡히는 알맹이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경제협력과 무역분야에서 합의문서가 하나도 조인되지 않은 사실을 지적한다.
「브레즈네프」미국방문의 가장 큰 목표의 하나가 미국으로부터 대규모 장기 차관과 기술협력을 약속 받고 최혜국 대우를 받기 위해서 의회를 설득하는 것이 라고 한다면 「브레즈네프」의 입장에서 볼 때 정상회담이 그렇게 성공적이 아니었다는 영가도 일리가 있는 듯 하다.
공동성명에 나타난 『양국은 상호간의 유익한 협력과 평화관계는 항구적인 경제관계수립으로 강화될 것』이라는 구절도 소련의 이런 주장을 반영한 것이다.
이는 경제협력문제에 진전이 있어야 미국측이 중점을 둔 전략무기제한회담(SALT)에 진전이 있으리라는 암암리의 경고와 같다.
또한 유대인에 대한 자유이민을 경제협력의 조건으로 고집하는 의회의 태도가 완화됐다는 증거가 아직은 없고 경제협력에 관해서는 성명이 한 건도 없이 정상회담의 막이 내렸다.
그러나 많은 「업저버」는 이번 정상회담의 주요 성과의 하나인 핵전쟁 방지선언 같은 것이 미국의 큰 양보, 「브레즈네프」의 큰 승리의 하나라고 평가한다.
소련이 원래 주장한 것은 제3국에 의한 핵무기의 사용을 방지하는 미·소 협정을 체결하자는 것이다. 미국은 소련의 요구를 지금까지 거부하다가 이번에 상호 입장을 절충하여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은 중공을 상대로 하는 핵 동맹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그것은 미·소 두 나라에 핵 전 방지의 최초 임무를 의미하는 것이고 소련과 미국의 최고 권위의 선언이며 두 나라의 핵 균형을 공식 확인한 것이다.
이 선언은 동맹국외 안보이익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밝히지만 「나토」동맹국들은 극도로 신경을 날카롭게 곤두 세우고있다.
「나토」전략은 소련이 서「유럽」을 재래식 무기로 전면 공격할 경우 미국은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개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미국이 소련과의 선언을 충실히 지킬 경우 「나토」의 방위태세가 모호해 진다는 것은 많은 「업저버」들이 지적하는 바이다.
「워싱턴·포스트」는 특히 중공입장을 지적하여 『중공은 「닉슨」이 소련의 대 중공 핵 시설에 대한 예방적 공격을 양해하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까지 할 수 있다』라고 논평했다.
이렇게 보면 경제·통상 문제에 관한 당장의 합의가 없다는 사실이 그대로 「브레즈네프」 미국방문의 『낙제점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판단이 나온다.
일부 「업저버」들은 심지어 「닉슨」과 「브레즈네프」간에 아직은 발표할 수 없는 어떤 암암리의 합의가 성립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믿는다.
「브레즈네프」는 의회지도자들 설득에 상당히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는데 의회의 태도가 누그러지는 것만큼 「브레즈네프」의 유대인 이민정책 역시 누그러지지 않는한 그가 바라는 만큼의 「달러」뭉치가 굴러가지는 않겠지만 「닉슨」과 「브레즈네프」는 암으로 산업계를 통한 의회공작을 한층 강화할 것으로 짐작된다.
물론 「시베리아」개발을 위한 차관협상이 구체화하면 미국은 미·소 관계와 미·중공 관계의 균형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미국이 「시베리아」일대에 경제이익을 갖는다는 것은 현재중공·소 분쟁의 촛점의 하나로 등장한 「시베리아」가 소련의 지배하에 번영하는 것을 미국이 지지하게 됨을 의미한다. 이는 중공으로서는 참기 어려운 일이다.
결국 「브레즈네프」는 통상·경제문제를 앞세우고 와서는 핵 군사력의 균형을 유리하게 이끄는 『초강대국의 「게임」』에서 오히려 뜻밖의 소득을 본 셈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약세를 보인 「닉슨」은 아무런 구체적인 소득이 없다는 주장이 높다. 그러나 「제임즈·레스턴」같은 사람은 두 초강대국이 싸움질보다는 「협조」하는 것이 서로에게 유리하다는데 합의한 사실만으로 성과는 크다고 주장한다.
그는 『결국 소련이 전 세계를 파멸시킬 수 있는 핵 군사력을 가지고 있지만, 고립되고 경제적인 침체로 고민하고 있어 밝은 전망은 없다고 볼 수 있는 이때 비록 약간 대등치 못한 흥정이지만 신뢰감이 조성된 것만도 「성과」라고 자위할 것을 제시한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닉슨」·「브레즈네프」가 정상회담을 사실상 「연례행사」로 하여 앞으로 매년 회담하기로 한 것이 이번 정상회담의 가장 큰 합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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