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앵커의 클로징 멘트 그리고 당신의 클로징 멘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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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강일구]

영화 ‘굿 나잇 앤 굿 럭’. 1950년대 미국 매카시즘에 맞서 싸운 CBS 언론인 에드워드 머로 얘기다. 제목인 ‘굿 나잇 앤 굿 럭’은, 그가 탐사 프로 ‘시 잇 나우(see it now)’ 등 모든 프로그램 말미에 던진 인사다. 원래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런던 공습이 한창일 때 엘리자베스 공주(현 여왕)가 라디오 연설에서 한 말이었다. 행운을 빌며 내일을 기약하는 절박한 인사를, 당시 CBS 런던특파원이던 머로가 리포트의 클로징으로 쓰면서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1962~81년 CBS ‘이브닝 뉴스’를 진행하면서 미국 TV뉴스 전성시대를 연 월터 크롱카이트. 최초의 앵커맨이자 “국민적 (신뢰를 받는) 기관이자 제도”(뉴욕타임스)로까지 추앙받는 인물이다. 그는 “이것이 세계 현황입니다(And that’s the way it is)”이란 말을 클로징에 즐겨 썼다. 얼핏 심심해 보이는 표현이지만 현업을 떠난 뒤 “내게 이 클로징 코멘트는 결과나 추후에 발생할 수 있는 논쟁에 상관없이, 자신이 본 대로 사실을 보도한다는 기자 최고의 이상을 요약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평범한 클로징 멘트도 많다. 월터 크롱카이트로부터 CBS 이브닝 뉴스를 물려받아 24년을 지킨 댄 래더의 인사는 “굿 나잇”이었다. 2004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병역 관련 오보 파문으로 앵커 직을 물러날 때도 “굿 나잇”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ABC의 간판 앵커 피터 제닝스의 인사는 항상 “내일 또 뵙겠습니다. 굿 나잇”이었다.

 국내에서는 정치적인 클로징 멘트들이 화제가 됐다. 편집, 인사 등 뉴스룸을 총괄하는 본격 앵커 시스템이 아니라 그저 뉴스 전달자(캐스터)에 불과하니 자신의 의견을 드러낼 공간이 클로징 정도밖에 없어서였다. 정치적인 클로징 멘트를 날렸다가 아예 앵커 생명이 클로징되는 경우까지 나왔다.

 개인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클로징 멘트는 JTBC ‘뉴스9’ 손석희 앵커의 “저희는 내일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다. 첫 오프닝에 르몽드 창간자인 위베르 뵈브메리의 “진실을, 모든 진실을, 오직 진실만을”이란 말을 인용한 데 이어서다. 매회 클로징에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과 함께 그가 직접 선곡한 음악이 흐른다. 앵커가 전면에 나서 있지만 보도국 전체가 뉴스를 만들며, 현실적 조건 속에서 오직 최선을 다하는 태도로써 평가받겠다는 뜻이다. 실제 손 앵커는 “이 자리를 떠날 때, 그저 할 만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갑자기 웬 클로징 멘트 타령이냐 싶으신가. 한 해가 저문다. 앵커는 아니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삶을 산 우리다. 각자 올해의 클로징 멘트를 던져본다면, 당신은 뭐라 하시겠습니까?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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