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아픔을 품다 세상의 안녕을 묻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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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조시단의 큰 잔치인 제32회 중앙시조대상과 제24회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 시상식이 26일 서울 의주로 리더스나인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한국시조 시인협회 이우걸 이사장, 서정택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수상자, 박명숙 중앙시조대상 대상 수상자, 김샴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 당선자. [강정현 기자]

올 한 해 한국 시조는 시대의 고달픔을 외면하지 않았다. 스러지는 재래시장에서, 잡부들의 얼어붙은 손에서 시가 돋아났다. 우리들의 ‘안녕’을 물었던 2013 중앙시조대상 시상식은 어느 해보다 뜨겁고 눈물겨웠다.

 26일 오후 6시 서울 의주로 리더스나인에서 제32회 중앙시조대상 대상과 신인상, 제24회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중앙시조백일장 연말 장원) 시상식이 열렸다. 중앙시조대상 대상은 박명숙(57) 시인의 ‘오래된 시장 골목’, 신인상은 서정택(51) 시인의 ‘윷놀이’,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은 김샴(20)씨의 ‘바둑 두는 남자’에 각각 돌아갔다. <12월 23일자 24·25면>

 대상을 받은 박명숙 시인은 “오랜 시간 광야에서 홀로 나부끼는 외로움에 기대 시를 써왔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선 그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정서적 자산이었는지 깨닫게 됐다”며 눈물로 수상 소감을 시작했다. 그는 “외롭게 쓰고 홀로 이룰 수밖에 없는 시조의 길을, 지금 이 순간도 오지 않는 작품과 처절하게 대립해서 싸우고 있을 가진 것 하나 없는 시인들께 상의 기운과 힘을 전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박 시인은 1993년 본지 신춘문예로 등단해 20년 만에 대상의 영예를 얻었다. 수상작 ‘오래된 시장 골목’은 관념 과잉에 빠지지 않고 시대의 아픔과 맞닿으면서 시조의 또 다른 품격을 보여줬다는 평을 들었다.

 지난 3년간 시조단을 떠나있던 서정택 시인은 신인상을 수상하며 누구보다 큰 박수를 받았다. 그는 “정규직 실직 이후에 불안정한 미래 때문이었는지 병을 얻어 그나마 나가던 공장도 그만둬야 했다”며 “나날이 피폐해지는 스스로를 보며 많이 힘들었는데 오늘 수상을 계기로 다시 살아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 시인의 경험이 고스란히 담긴 ‘윷놀이’는 “하루치의 일당으로 살아가는 잡부의 삶을 통해 고통을 감내하는 아픔과 희망을 동시에 변주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을 수상한 김샴(본명 김태년·경남대 3학년)씨는 샴쌍둥이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병약하고 허기에 시달렸던 일화를 전하면서 “그 허기가 시인의 길로 인도했다. 앞으로 내 시가 내 인생은 물론 누군가에게 ‘포르투나(fortuna·운명의 여신)’가 될 수 있도록 정진하겠다”고 밝혔다.

 원로 시인들의 축사도 이어졌다. 시조대상 심사위원인 정수자 시인은 “요즘 안녕치 못한 세상에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되묻는 인사가 화제다. 시조의 근간도 그렇다. 이번 수상작들은 사회성과 서정성의 좋은 결합을 보여준, 시대의 ‘안녕’을 묻는 작품이었다”고 전했다.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우걸 이사장은 “재래시장 풍경을 통해 자본주의의 그늘을 잘 보여준 박명숙 시인을 비롯해 시대를 등지지 않은 수상자들께 축하를 전한다”며 격려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중앙일보 김교준 편집인과 한국시조 시단을 대표하는 중견·신예시인 100여 명이 참석했다.

글=하현옥·김효은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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