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기행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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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요즘 본지에 연재되고 있는 「모스크바」기행문은 상당한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것은 감동적인 명문의 인기와는 다른 것이다. 소련에 대한 신기감 같은 것이 독자들의 마음에서 엿보인다. 더구나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한국인의 소련방문이 실은 더 큰 관심사인 것 같다. 단순히 소련의 풍광만이 아니라, 한국인과 소련인, 한국과 소련…이런 분위기의 어떤 막연한 심리까지 포함된 흥미일 것으로 추측된다.
유덕형씨는 우선 「모스크바」공항에서 입국절차로 2시간여를 지체했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유씨의 소련방문은 「크렘린」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계획된 어떤 각본은 아닌 것 같다. 설령 그것이 하나의 「제스처」였다고 해도, 아뭏든 그만큼 벽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유씨의 거동은 의외로 편했던 것(?)을 기행문의 행간에서 읽을 수 있다. 소련여자와 만나 『한잔하자』는 제의까지 주고받을 수 있었던 일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공식 「스케줄」을 벗어나 사사로운 산책이 허용된 것은 상당한 예외이다. 공산권에선 「이질분자」가 그들의 내면에 사사롭게 접근하는 것은 거의 본능적으로 꺼려한다. 그러나 소련만해도 그 점에선 동양식 공산주의와 다른 인상을 준다. 「호텔」의 시설하며 「메뉴」, 또 「매너」들까지도 구미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더라고 유씨는 말한다.
「모스크바」는 전후 거의 30년을 통해 우리에겐 별세계요, 금단의 지역이었다. 유씨는 바로 그런 고도에 상륙한 느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바로 거기서 같은 우리말을 쓰고, 또 우리와 똑같이 생긴 사람을 만났다. 그러나 그것은 반가움보다는 두려움이 앞서더라고 그는 고백한다. 그들은 같은 한국인이지만 「북」자가 하나 더 붙어 있는 사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평양을 가보자는 「선전」을 펴놓았다. 유씨가 두려움을 가졌던 것은 당연한 것 같다. 새삼 「분단」의 「콤플렉스」는 한반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역 어디서나 있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기행문중에서 재미있는 관찰이 하나 있다. 『특정의 체제아래서 길들여진 특정의 습관은 분명히 「자연스러운 관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특정의 체제」「특정의 습관」이 자연스러워지는 것은 전체주의 국가의 비극임에 틀림없다. 자연과 부자연의 「밸런스」를 잃는 것은 국가의 비극뿐 아니라 인간의 비극이다. 특정의 체제란 그만큼 무서우며 인간이 타기해야 할 조건이다. 인간이 자연스럽게 마음 편하게 산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하며 또 본원적인 문제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한 국민이 그 나라 땅을 마음놓고(?) 밟을 수 있었던 것은 불과 2, 3년 전까지도 생각할 수 없었던 새로운 변화이다. 「변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슬기가 새삼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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