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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근영의 그림 속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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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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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한껏 차려입은 손님들이 술과 음식을 나눈다. 오른쪽에 앉은 모피 모자 쓴 남자가 집주인 베리 공작이다. 손님들은 주인에게 문안 인사를 하고, 주인은 선물을 내린다. 집주인의 권세가 어찌나 대단한지 공작의 애견 두 마리가 식탁 위에 올라가 접시를 핥고 있어도 제지하는 이 없다. 그림 위 반원형 창엔 해와 별이 비춘다. 염소자리와 물병자리다. 때는 1월, 신년하례회 중인 베리 공작의 성이 배경이다.

 ‘베리 공작의 호화로운 기도서(Les Tr<00E8>s Riches Heures du Duc de Berry)’는 15세기 초 만들어진 가정용 기도서다. 베리 공작(1340~1416)은 프랑스 국왕 장 2세의 아들이자 샤를 5세의 남동생으로 막대한 영지를 거느린 자산가였다. 예술 애호가로도 이름났다. 여러 종의 채색필사본을 제작했는데, 랭부르 형제(폴·에르망·장 랭부르)에게 그리도록 한 이 기도서가 대표적이다.

랭부르 형제, ‘베리 공작의 호화로운 기도서’ 중 1월, 양피지에 채색, 29×21㎝, 프랑스 샹티이성 콩데 미술관 소장.

 책은 중세에 유행했던 시도서(時禱書)다. 중세의 가톨릭 신자들은 하루의 특정한 시간대에 사계절의 변화에 맞춰 기도문과 예배 방식을 적어 둔 기도서를 보며 기도를 드렸다.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 기도서는 단순한 책이 아니라 부와 명예·신분의 상징이며 예술품이었다. 채식(彩飾)화가·세밀화가·필경사가 총출동, 양피지 한 장 한 장에 공들여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적어 넣었다.” (이명옥,『학교에서 배웠지만 잘 몰랐던 미술』, 시공아트) 맞춤형 채색필사본 한 권이 완성되는 데 여러 해가 걸리기도 했다. 베리 공작의 206쪽짜리 양피지 기도서 또한 그랬다. 번쩍이는 황금색, 당시 최고가 안료였던 울트라 마린이 6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선명하다.

 자신의 취미에 취한 베리 공작은 주민들에게 높은 세금을 부과했고, 거액의 빚을 남긴 채 급사했다. 먼저 떠난 공작에 이어 랭부르 형제까지 숨지면서 기도서는 미완으로 남았다. 사인은 흑사병으로 추정된다. 부와 권력, 그리고 호화 기도서로 드러낸 신심도 전염병은 피해가지 못한 셈이다. 공작의 후손들에게 전해지던 미완의 기도서는 1480년 장 콜롬브가 완성했다.

 기도서에는 열두 달에 해당하는 세시풍속, 귀족과 농노의 생활상도 그려져 있다. 1월의 신년하례에 이어 3월의 쟁기질, 6월의 목초 수확, 7월의 양털 깎기, 8월의 매사냥, 9월의 포도 수확 등이 차례로 나온다. 명화 달력의 효시랄까. 집집이 달력을 바꿔 걸 때다. 새 달력에 새로이 가족의 기념일을 표시하며 2014년을 계획하는 때다.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