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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게이트 사건 파헤친 언론의 기수|「워싱턴·포스트」지의 「워터게이트」 3총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언론에 대한 「닉슨」 미국 대통령의 적대 감정은 유명한 이야기다. 62년 「닉슨」은 「캘리포니아」주 지사 선거에서 낙선한 후 그때로서는 마지막이 될 것으로 알았던 기자 회견을 갖고 『이제부터는 기자 여러분들이 이리 차고 저리 차고 할 「리처드·닉슨」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울분을 토한 것도 그가 평소 언론에 대해 피해 망상에 빠져 있었음을 말해 준다.
「닉슨」은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흐른 뒤 다시 한번 「저널리즘」 앞에 두 손을 드는 운명을 만났다. 「닉슨」의 제7의 위기로 일컬어지는 「워터게이트」 사건은 사실 「워싱턴·포스트」의 『「워터게이트」 3총사』의 초인적인 추격이 없었던들 백악관 대변인 「지글러」가 낙인찍은 『3유급 도난 사건』으로 흐지부지되고 말 뻔했다.

<편집국장 진두 지휘>
「워터게이트」 3총사는 「워싱턴·포스트」의 「워싱턴」 D·C 담당 취재 부장 「배리·서스먼」 (38) 그리고 취재기자 「칼·번스틴」 (29) 「로버트·우드워드」 (30)의 세 사람을 말한다. 작년 6월17일 「워터게이트」의 민주당 사무실에 침범한 괴한 5명이 체포됐다는 「뉴스」를 들은 「서스먼」은 토요일인데도 잠시 신문사에 나왔다.
마침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당시 「버지니아」 담당 올챙이 기자 「우드워드」와 「번스틴」 뿐이었다. 그들은 도난 사건에 관한 한낱 「로컬·뉴스」로 사건을 간단히 취급 보도했다.
그러다가 7월의 민주당 지명 대회가 끝난 뒤 좀 수상쩍은 생각이 든 편집국장 「하워드·시먼즈」가 「서스먼」 「우드워드」 「번스틴」으로 특별 취재반을 구성하도록 지시했다.
10월부터 놀라운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하여 「닉슨」 재선 위원회 안에 민주당 후보 「스파이」 조직, 흑색 선전반이 있고 대통령 보좌관 「홀도먼」과 자금원과의 관계까지 속속 드러났다.
그때부터 그들은 거의 매일 특종 기사를 하나씩 터뜨렸다. 「우드워드」와 「번스틴」은 이제 『「우드워드·번스틴」 쌍동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두 사람이 지난 3백 여일 동안 쓴 기사는 2백 건에 달하고 그 대부분이 신문의 1면을 장식했으며 기사량을 글자로 따지면 25만 자나 되는 분량이다. 그들은 지난 6개월 동안 휴가를 가진 일이 없고 하루 16시간씩 일하고 있다.

<숱한 압력과 비난도>
그 동안 「워싱턴·포스트」지와 「우드워드·번스틴」 쌍둥이가 받은 압력과 비난은 말할 수 없이 많았다. 「지글러」 백악관 대변인은 「워싱턴·포스트」지를 『 저질 「저널리즘」』이라고 몰아치고 「워터게이트」 사건을 그렇게 보도하는 것은 『인격 모독』이라고 매도했다.
「워싱턴·포스트」 사교 담당 기자 「도로디·매커들」 여사는 백악관 사교 행사에 출입을 금지 당하고 「워싱턴·포스트」 기자는 「브리핑」에서도 제외됐다.
「워싱턴·포스트」가 소유하고 있는 「폴로리다」의 「텔리비젼」 방송국은 현지 공화당 유력자들의 광고 「보이코트」 때문에 파산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닉슨」은 「워싱턴·포스트」라는 1급 적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는 의미에서 선거가 끝난 뒤 「라이벌」지인 「이브닝·스타」에 단독 「인터뷰」까지 허락했다.

<우드워드는 올챙이>
특히 「워싱턴·포스트」가 고통스럽게 느낀 것은 다른 신문들이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에 하나도 합세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기자 생활 18개월 밖에 안 되는 올챙이 기자 「우드워드」와 얼굴에 주근깨 투성이의 「번스틴」은 추격을 늦추지 않았다. 편집부장 「벤저민·브래들리」의 격려는 대단했고 발행인「캐더린·그레이엄」 여사는 사운을 건다고까지 선언했다. 그렇게 하여 작년 12월초 「하워드·헌트」의 관련이 폭로되자 모든 신문들이 사건 보도에 비로소 본격적으로 나왔다.
「우드워드」·「번스틴」「팀」은 지금 사건 관련 설들의 이력서를 줄줄 외고 자기 가족 생일보다 사건 관련자들의 생일을 더 잘 알고 있을 정도다. 「워싱턴·포스트」의 영광은 4월30일 공식으로 확인됐다.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에 관한 방송 성명에서 이 나라의 「활기찬 자유 언론」을 찬양했다.
다음날 「지글러」는 작년 6월 이래의 고집을 꺾고 「워싱턴·포스트」와 「우드워드」·「번스틴」「팀」에게 정식으로 사과했다. 지금도 「워싱턴·포스트」를 계속 읽지 않고는 「워터게이트」 사건 수사의 진전을 잘 모른다. 정보를 가진 사람은 「워싱턴·포스트」로 전화를 건다. 「뉴요크·타임스」는 마침내 경쟁을 포기하다 시피 했다. 「펜터건·페이퍼」 사건 때 「뉴요크·타임스」가 독주한 사실을 고려하면 「뉴요크·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간의 경쟁은 무승부다.

<3총사, 매일 인터뷰>
요즘 「벤저민·브래들리」 『「워터게이트」 3총사』는 연일 「인터뷰」를 당하느라고 일하다 말고 「넥·타이」를 고쳐 매야 하는 일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있다. 퇴근 시간 무렵 「블랙·타이」의 성장으로 어느 모임에 초청 연사로 불려 가는 「브래들리」의 모습이 자주 보인다. 그 동안 「서스먼」은 2천「달러」,「우드스틴」 쌍동은 한 사람 앞에 3천 「달러」 이상씩의 각종 상금을 탔다. 「퓰리처」상은 벌써 따 놓은 당상이다.
「우드워드·번스틴」 쌍둥이가 지금 쓰고 있는 「워터게이트」 사건에 관한 내막 기사는 출판사끼리 아귀다툼이 벌어진 끝에 「시몬&셔스터」 출판사에 낙찰되어 두 사람은 5만5천 「달러」의 착수금까지 받았다.
「워싱턴·포스트」에는 소위 일류 기자들이 기라성처럼 많다. 그런 만국에서 올챙이 기자들에게 「워터게이트」라는 큰 덩어리가 떨어진 것은 「워싱턴·포스트」 간부들도 처음에는 사건 자체를 그렇게 큰 것으로는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닉슨」 정치 생애에 씻지 못할 흙탕물을 남길 것이고 많은 「닉슨」 측근들을 사회적으로 매장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닉슨」의 자유 언론 찬양, 「지글러」의 사과에서 「닉슨」 행정부와 미국 「저널리즘」간에 통풍의 길이 뚫리고 있다는 전화위복의 기회를 남길 것이라는데서 「저널리스트」 들은 큰 위안을 얻는다.

<출판사와 계약 맺어>
「워싱턴·포스트」의 「라이벌」신문 「이브닝·스타」가 「워싱턴·포스트」는 『있을 수 있는 모든 장해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놀라운 열의로써』 사건 보도에 정력을 다 했다고 사설로 칭찬하고 친 「닉슨」, 반 「포스트」로 유명한 「조셉·올섭」까지 이 신문에 찬사를 보낸 것은 이 나라 「저널리즘」에서 오랜만에 보는 밝은 분위기다. 「브래들리」는 그러나 영광에 취하기보다는 자기 경계의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는 지금 「워싱턴·포스트」가 『「드라머」 일부』라고 지적하고 『기자와 편집자들은 무대에서 떨어져 있어야 한다』 고 촉구한다. 「워싱턴·포스트」의 오늘을 있게 한 「브래들리」는 자유 언론의 승리에 크게 공헌하고 경쟁에 이긴 「워싱턴·포스트」가 「독선의 여행」을 탈피하지 못한다면 불행한 일이라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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