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6)새 조경 끝낸 성역 현충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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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그 정신은 민족의 지도이념>
사당은 한 가문의 전통과 선조에 대한 긍지의 표상이다. 현충사는 이 나라 이 민족의 사당. 빛나는 충의와 위업의 본을 보인 이충무공의 얼을 여기 모시고 있다. 지금 우리는 그의 얼을 이어 받은 후예. 바로 그 정신은 우리 민족의 지도이념이 되어야하고 그대로 우리 생활 속에 실천되어야한다.
현충사를 성역화 한 것은 범접할 수 없는 신역으로 꾸미자는 것이 아니다. 결코 깨끗하고 아름답게만 가꾸자는데 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다. 충무공의 빛나는 얼을 호흡할 수 있고 우리 스스로가 그 얼을 지주로 삼을 수 있는 민족의 정신적 도장이 되어야 한다는데 있다.

<후예들의 살아있는 동반자>
그릇 생각하는 일부 국민들은 여기를 일컬어 국립공원 운운한다.
그러나 어찌 거닐며 즐기는 곳이 되랴. 사당은 근엄해야 하고, 참배함에 있어 받들어 모시는 마음가짐이 우러나야한다. 그렇다고 해서 제사나 받드는 우상적 존재가 되어서도 안될 것이며 우리들의 현실 속에 살아있는 동반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같이 현충사를 국민생활 속의 정신적 도량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역시 장엄해야하고 정결해야한다.
경내에 들어서면 가슴속에 찌릿하게 전해오는 그 무엇이 있어야한다. 역사의 깊은 가르침이라 해도 좋고, 연륜의 해묵은 전통이라 해도 좋다. 할아버지가 극진히 받드는 뜻으로 심은 사당 앞의 나무와 아버지가 또한 옮겨다 놓은 돌 한덩이.
이런 하나 하나가 사당의 경내에서는 산 호흡이요, 생명력이 되는 까닭이다. 허허한 벌판 위의 덩그런 집 한 채는 사당이 될 수가 없다. 대대로 쓸고 가꾼 흔적이 거기 그윽히 살아있을 때 비로소 정신적 긍지를 갖게 마련인 것이다.

<2억5천만원 들여 수축공사>
이 충무공이 남해해전에서 순국하고 이어 임진란이 종식되자 곧 아산 백암리 방화산 기슭에 현충사가 세워졌다. 그리고 조선왕조의 봉건사회에서도 국왕까지 나아가 그의 충의를 길이 되새겨 왔는데 일제시대에 이르러 민족적인 향화가 줄어들고 사자조차 허물어졌다. 그러나 결코 끊어져서는 안 되는 그 얼이기에 1932년 전 민족의 성금으로 사자가 다시 세워졌던 것을 우리는 10여년 전까지 지켜 보아왔다.
현충사를 성역화 하는 한편 경내를 10만여평으로 확정, 중건한 것은 1969년. 그 경역을 확장하고 단장해 면모를 일신한 것은 곧 우리가 그의 정신을 깨달아 이어받는 폭을 넓히고 깊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것은 뻗어나는 국운의 나타남이며 민족의 성장하는 「메머리」가 된다.
지난 1년 동안 현충사 경내는 다시 수축되었다. 나무를 심고 돌을 옮겨다 놓으며 고택을 복원하는 등 2억 5천만 원을 들여 보다 근엄한 자리가 되게 가꾸었다. 사당 앞의 넓은 뜰에는 88종 2만여 그루의 나무를 심었고 펀펀하던 잔디밭에는 구릉과 동산을 조성했으며 주위에 걸맞도록 연못도 확장했다.

<연5만 동원·돌도 3백50트럭>
여기 동원된 연인원은 5만여명이요, 돌이 3백50여「트럭」(8톤짜리), 흙 1천4백「트럭」이 반입됐다. 산만하게 심어 있던 나무들은 규모 있게 군식하고 꽃이 사철 끊이지 않게 하며 산새·들새들도 여기 와서 서식토록 꾀하고 있다.
그러나 자칫 이충무공의 얼이 현충사에만 있는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의 여기저기 발자취가 담겨있는 역사의 현장도 잊어서는 안 된다.
한산도를 비롯하여 충무·노량·여수·우수영 등 남해일대에는 그의 유적이 얼마든지 많다. 그래서 문공부는 그런 유적 중에서 관음포의 이충무공 유허, 남해군의 충렬사, 통영의 충렬사, 여수의 좌수영대첩비와 타루비 등을 이번에 다시 추가 지정해 보호키로 조처했다.

<탄신 맞아 그 큰 유훈 되새겨>
그러나 그러한 유형의 것들만이 소중한 것이랴. 남해안 일대의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충무공을 사사로이 신격화하여 모시는 신앙이 전해 온다. 그것을 한낱 속신으로 간과하기보다는 그들이 신으로 모셔야할 만큼 간곡했던 추앙심을 오늘에 다시 소생시키는 것도 실은 중요한 과제이다.
흔히 유적·유물을 지정 보호한다고 하면 건물이나 짓고 울타리를 치는 것처럼 예사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보호는 으례 정부당국의 보조로 으리으리하게 단장해야 하는 것인 양 착각들을 하고있다. 그러나 오히려 보호는 국민 자신이 우러나서 해야 하는 것이요, 단장이야말로 대대로 물려오는 자국 속에 살아있는 얼이 되어야 한다.
28일은 4백 28회의 이충무공 탄신일. 이 날에 그의 사당과 유적을 다시 돌아보는 것은 우리 가슴속에 심어있는 그의 유훈을 재확인하고 깨우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진정 그래야만 되겠다. 【<글>이종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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