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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고 혁신대학 꿈꾸는 중앙대 이용구 총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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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19일 오후 총장 인터뷰를 위해 찾은 서울 흑석동 중앙대 캠퍼스의 풍경은 5년여 전과 사뭇 달랐다. 학교 안팎을 구분하던 담장은 사라졌고, 그 자리엔 잔디밭과 보행로가 조성됐다. 2010년 리뉴얼한 중앙도서관의 외벽은 회색 타일 대신 초록빛 도는 강화유리로 변했다. 지난해 초 완공된 1000명 수용 규모의 학생 기숙사 옆에는 1500명 규모의 새 기숙사가 신축 중이었다. 운동장 한쪽에선 국내 대학 단일 건물로는 최대 규모(연면적 7만3899㎡)인 100주년기념관·경영경제관 건립을 위한 기초공사가 한창이었다.

두산 투자 이후 교수 특권의식부터 손질

 2008년 두산의 경영 참여 이후 중앙대가 겪은 변화는 이런 겉모습만이 아니다. 교직원 사회에도 개혁의 바람이 불었다. 중앙대는 2009년부터 교수·직원의 업적을 S·A·B·C 네 등급으로 평가해 연봉과 연계했다. 올해부터 소속 교수 약 80%의 동의를 얻어 강의평가 결과, 논문 실적, 연구비 수주 현황을 학생을 포함한 대학 구성원 모두에게 공개했다. ‘투자의 힘’과 체질 개선 노력이 맞물리면서 외부의 평가도 달라졌다. 중앙대는 5년 만에 본지 대학평가 순위가 6계단(2008년 14위→2013년 8위) 뛰었다.

 이날 약학관 11층 ‘유니버시티 클럽’에서 만난 이용구 중앙대 총장은 “법인 영입 이후 5년간 인프라 구축에 힘을 쏟았다면, 개교 100주년을 맞는 2018년까지는 교육과 연구 경쟁력 강화를 본격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장은 “대학의 본분인 교육·연구에 충실한 대학, ‘대학다운 대학’이 되는 데 전력해 아시아 최고의 혁신대학으로 자리 잡겠다”고 강조했다.

 - 지난 5년간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두산이 투자를 많이 했다. 학교 분위기도 변했다. 이사장(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방향을 제시했다. 이사장은 교수에게 ‘특권의식을 놓자’고 했다. 교수의 본분인 교육과 연구에 충실하자는 거다. ‘열심히 하자’고만 해선 잘 안 되니까 이를 뒷받침하도록 교수평가 제도를 바꾼 거다.”

 - 총장 취임 후 평가에 따른 페널티를 강화했다.

 “평가 결과 C를 받은 교수는 승진, 연구년(안식년), 해외연수 선정, 연구조교 배정에 제한을 받는다. 2회 연속 C를 받으면 해당연도의 강사료가 회수되고 다음해 강의 시수가 늘어난다. 3회 연속 C가 나오면 개인 연구실을 회수한다. (3회 연속 C 대상자는) 2015년 봄부터 나온다. 반면 본분을 지키는 교수는 기꺼이 지원한다. 올해 연구장려금으로 24억원을 썼다. 인센티브도 활발하다. 15명이 2000만원 이상을 받았다. 5000만원을 받은 교수도 나왔다.”

 이 총장은 올해 ‘커리큘럼 평가인증원’을 설립했다. 외부에서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초빙해 학과의 교과과정, 교수의 강의계획서를 평가한다. 국내 대학에선 최초의 시도다.

학문도 선택과 집중, 전공 77→41개로

 - 교수의 강의계획서를 리뷰하는 이유는.

 “‘10년 묵은 강의록’을 없애겠다는 거다. 나도 교수를 30년 가까이 하다 보니 ‘하던 대로’ 하게 되더라. 그래서 외부의 시각을 통해 교수가 세운 강의계획이 시대의 흐름에 맞는지 살펴보고 조언도 얻으려 한다. 교수는 강의계획서에 충실하고, 학과는 시대에 맞는 커리큘럼을 고민하라는 거다. 내년 3월 학기부터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 교수들의 불만도 만만치 않을 텐데.

 “직접 총장을 찾아오는 분도 있다. 그러면 이렇게 말씀드린다. ‘학교는 기본적인 허들(장애물)을 정했다. 이것만 넘어달라. 그 후엔 뭐든지 해도 좋다. 학교도 지원한다’. 때론 솔직하게 여쭤본다. ‘교수님은 이 정도도 안 하는 사람을 동료라고, 교수라고 부르시렵니까’. 대부분 동의하고 돌아간다.”

 중앙대는 학과·전공의 재조정도 활발하다. 지난 5년간 총 18개 단과대학, 77개 학문 분야(학과·학부)를 11개 단대, 41개 전공으로 개편했다. 유사·중복학과를 통합하고, 경쟁력 있는 학과를 육성하겠다는 전략이다.

 - 국내 대학에선 전례가 없는 규모다.

 “어느 대학도 모든 학문을 다 가져갈 수는 없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게 해당 학문에 대한 사회적 수요와 교육 소비자다. 학교의 미래, 수요를 감안해 특성화 학문 단위를 신설하고 있다. 경영학부 글로벌금융, 공공인재학부, 국제물류학과, 융합공학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등이 그 예다.”

 - 교수·학생과의 갈등도 컸겠다.

 “억울한 면이 많다. ‘문사철(文史哲)을 홀대했다’고 비판하는데, 실제론 학생 정원은 거의 줄지 않았고 지원은 오히려 늘렸다. ‘복지 4형제’(가족복지·사회복지·아동복지·청소년복지학과)를 사회복지학부로 한데 묶었다. 애초에 불필요하게 나눠놨기 때문에 통합했다. 교수끼리 의견이 다르다고 전공·학과를 나누는 건 교수사회의 병폐다. 민속학 전공을 국문학의 한 분야로 조정했는데, 2학년만 되면 학생 다수가 타과로 옮기는 현실을 반영했다.”

 중앙대는 ‘학점이 짠 대학’이다. 지난해 교육부가 조사한 결과 이 학교 학생의 평균 학점은 182개 대학 중 156위로 나타났다. 2009학년부터 학점을 엄격한 상대평가(A학점은 35% 이내, D학점 이하는 5% 이상)로 매겼다. 여느 대학과 달리 F학점, 학점포기 과목 등을 표기하지 않는 ‘취업용’ 성적증명서를 발급하지 않는다.

학점 거품 없애니 기업 신뢰 더 높아져

 -‘우리만 손해’라는 학생 불만도 나올 법한데.

 “결국은 학생에게 득이 된다. ‘학점 세탁’은 대학이 신뢰받지 못하는 원인이다. 학사관리가 엄격한 학교에 대한 믿음은 오히려 높아진다. 최근 만난 대기업 인사담당 임원은 ‘중앙대의 학점은 믿을 만하다. 외국대학 성적과 비교해 적용한다’고 전했다.”

 - 타 대학도 중앙대의 변화에 관심이 많다.

 “내가 교수사회의 ‘공공의 적’이 됐다. 지방대 교수인 지인에게 들으니 어떤 교수들은 ‘중앙대 총장 너무한다’고 성토한다더라(웃음). 교수사회는 그간 ‘치외법권’ 지대였다. ‘교수를 감히…’라는 특권의식을 깨는 데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어느 강연에서 타 대학 직원이 ‘중앙대 개혁은 총장이 하나, 이사장이 하나’라고 묻더라. 교수 출신 총장은 못 하는 개혁을 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물론 총장인 내가 책임지고 하는 거다. 다만 이사장이 전폭적으로 지원하니 가능하다.”

 - 학령인구 감소를 대비한 대학 정원 감축이 논의되고 있다.

 “일부 부도덕한 대학 탓에 전체 대학이 매도되는 게 안타깝다. 대학답지 못한 대학은 도태돼야 한다. 물론 몇몇 대학의 퇴출만으론 부족하다. 다른 대학도 (정원 조정에) 동참해야 한다. 교수·교사(校舍) 확보율 같은 객관적인 교육여건에 따라 정원을 감축하는 등 대학이 수용할 수 있는 공정한 잣대 마련이 관건이다.” 만난 사람=김남중 사회1부장

정리=천인성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이용구 총장=1954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서울 대광고를 졸업했다. 학부(고려대)에서 경제학, 대학원(미국 미네소타대학)에서 통계학을 전공한 이 총장은 “사람 이름은 기억 못 해도 숫자는 잘 기억한다”고 말했다. 경제학에서 배운 거시적인 통찰, 통계학에서 익힌 논리적인 사고가 대학 운영 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중앙대는 교수·학과·계열의 논문·연구비 현황을 실시간으로 확인·점검하는 시스템을 운영한다. 1986년부터 중앙대 응용통계학과 교수로 재직해온 그는 올해 2월 14대 총장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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