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독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호머」의 서사시에 나오는 「트로이」를 발굴하겠다는 꿈을 안고 「슐리만」은 그 준비로 젊을 때부터 외국어습득에 힘을 들였다.
그는 자기가 배우려는 외국어에 관한 여러 학습서에서 가장 좋다고 여기는 책 한 권을 골랐다. 그리고 그 책을 중심으로 하여 약3개월이면 「마스터」할 수 있었다.
물론 그는 남의 집에서 일하는 몸이었다. 따라서 충분한 학습시간은 있을 리 없었다. 그런 처지에서의 3개월이란 보통 학생의 1개월 정도밖에 안 된다.
이리하여 「슐리만」은 사업에서 은퇴하고 「트로이」 발굴에 나서게 될 무렵에는 12개 국어에 능통한 고고학고가 되어 있었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꿈꾸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역시 「슐리만」에게는 어학에 비범한 소질이 있었음이 틀림없다.
어학이란 예부터 어려운 것으로 되어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가장 이상적인 직업은 「서기」였다.
현존한 「파피르스」 문서에 『열심히 공부해서 서기가 되라. 그러면 반드시 훌륭한 지도자가 되어 출세할 수 있다』고 아들을 타이른 아버지의 교훈이 적혀있다. 「서기」란 그저 글자를 쓸 줄만 알면 되는 자리였다.
자기 나라말보다 더 어려운 게 외국어이다. 그것은 단순히 말뿐이 아니라 말의 배경에 있는 문화며 발상법에 대한 위화감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일제 말에 일본은 외국어교육을 전폐한 적이 있다. 그때 내세운 이유는 외국어습득을 위해 소비되는 시간을 다른 학과에 돌리면 교육과 재질개발에 몇 곱이나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외국어교육은 시간의 낭비나 다름없다고 본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6년 이상씩이나 학교에서 배운 영어실력으로도 「타임」지 하나 제대로 못 읽고, 「라디오·뉴스」 해설도 못 듣는 것은 물론, 쉬운 인사편지도 못쓰는 대학 졸업생들이 많다. 주입식의 외국어교육에 잘못이 있었을 것이다.
이번에 고교생을 위한 일본어독본이 나왔다. 이 책 속에 담은 기본단어 l천2백어면 일상생활을 위해서는 충분하다.
일본어강습소마다 크게 성황을 이루고 있는 것이 오늘의 실정이다. 이래서 고교생 때부터 일본어를 습득케 하는 것이 좋겠다는 뚜렷한 판단이 섰을 것이다.
사실 오늘날 일본어를 무시할 수는 없는 세계이다. 더욱이 한국은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일본과 깊은 유대를 가지고 있다. 일본어를 배워서 조금도 나쁠 까닭은 없다.
또 일본어는 우리에게는 비교적 배우기 쉬운 외국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본어를 제2외국어로 채택한다는 단을 내림에 있어 한자교육을 시행할 때만큼이나 충분한 검토가 있었는지? 또는 일본어를 배워도 좋을 만큼 뚜렷한 주체의식을 젊은이들이 지니고 있다고 보았는지? 혹은 또 이번 「일본어독본」이 얼마나 어학교육자의 면밀한 검토를 거친 것인지가 궁금할 뿐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