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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시장 지각 변동 … 기민한 자가 기회를 잡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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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4호 23면

지금은 글로벌 석유회사인 엑손모빌과 애플이 세계 최대 시가총액 기업 자리를 놓고 다투고 있지만 앞으로 엑손모빌을 비롯한 석유회사들의 입지는 점점 좁아질 것이라는 것이 이코노미스트의 주장이다. 이코노미스트가 이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로 제시한 것은 셰일가스로 대표되는 대체 에너지원 개발과 전기차와 같은 자동차 신기술의 상용화 등이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이 들려주는 ‘경영의 한 수’

이에 대해 글로벌 석유업체들이나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동조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누가 맞는지 여부를 떠나 이런 주장이 제기되는 배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석유·가스 등 전통적 에너지원과 다른 방식으로 생산되는 비 전통 에너지원(unconventional resources) 개발 열풍, 그로 인한 에너지 공급원의 다변화 등은 전통적 에너지원의 수요는 물론 비전통 에너지를 원료로 하는 사업의 경쟁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향후 에너지 시장 변화를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최근 미국 온라인 주식 전문 리서치기관인 디비던드채널(Dividend Channel)은 펀더멘털과 주가를 기반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눈 여겨봐야 할 종목의 하나로 페트로로지스틱스(PetroLogistics)를 선정했다. 페트로로지스틱스는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프로필렌의 원료인 프로필렌을 생산하는 중소업체다. 디비던드채널은 “강한 펀더멘털에 비해 현재 주가는 매우 저렴하다”고 평가했다. 이름조차 생소한 중소 화학업체인 페트로로지스틱스에 대해 미국 증시가 관심을 갖는 것은 에너지 시장의 판도 변화와 관련이 깊다.

시장 변화 읽고 사업모델 빠르게 변화
셰일가스 양산이 본격화되면서 북미 천연가스 가격이 급락하기 시작했다. 가스의 부산물인 에탄의 공급량이 늘어나면서 기존 원유 정제과정에서 나오는 나프타(Naptha)를 대체하고 있어서다. 이는 나프타나 에탄 모두에게서 공통으로 얻을 수 있는 석유화학제품들 중에서 나프타 분해(cracking)를 통해 생산되는 제품들이 에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제품보다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다. 시장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존 나프타 설비 중심의 메이저 업체들은 에탄 중심으로의 사업모델 전환을 고민하게 됐다. 실제로 에탄 분해 설비는 대량 건설되고 있다. 2017년까지 미국에서 추가로 건설될 에탄 기반 화학제품 설비 규모만 해도 연 1120만t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페트로로지스틱스는 이 같은 변화를 미리 감지하고 대비했다. 이 회사는 경쟁력을 잃어가는 나프타에서 새로운 기회를 재빠르게 발견하고 움직였다. 다수의 업체가 에탄으로 사업모델을 전환할 경우 나프타 분해로 주로 얻을 수 있었던 석유화학제품들의 생산이 줄어들 것은 분명하다. 그중 대표적인 제품이 플라스틱의 한 종류인 폴리프로필렌의 원재료로 쓰이는 프로필렌이다. 폴리프로필렌은 자동차 내·외장재, 전자제품, 섬유 등의 기초원료로 쓰이는데, 최근 신흥국을 중심으로 그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페트로로지스틱스는 이 시장을 겨냥하고 북미에서는 처음으로 독립적인 프로필렌 생산시설을 갖췄다. 프로필렌 생산을 기반으로 토털, 이네오스와 같은 글로벌 화학업체들과 장기 판매 계약을 맺었다. 시장 변화를 예측하고 ‘선도자(first mover)’로서 입지·설비·원료 공급처·제품 수요처 측면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했다. 닫혀가는 시장에서 기회를 발견하고 내 것으로 만든 진정한 ‘신의 한 수’인 셈이다.

국내에서는 효성, 롯데케미칼, 여천NCC(대림산업-한화케미칼 합작사) 등이 최근 프로필렌 공장을 증설하며 시장 변화에 대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다수의 북미 메이저 업체들이 에탄 중심으로 사업모델을 전환하는 지금, 국내 업체들의 프로필렌 공략 전략에 대한 성과를 향후에 평가해보는 것은 의미 있을 것이다. 통상 에너지 시장의 선두가 되기 원하는 기업이라면 원자재 탐사개발생산 등 소위 ‘업스트림’ 영역에서 답을 찾으려 들기 쉽다. 하지만 가치 창조 사슬을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트레이딩’이라는 분야로 옮겼을 때 엄청난 결과를 보여주는 기업도 있다. ‘글렌코어 엑스트라타(Glencore Xstrata, 이하 글렌코어)’가 그 사례다.

가치사슬의 변화 … 전문영역에서 시작
세계 최대 원자재 중개업체인 글렌코어는 에너지원의 거래를 활성화해 ‘트레이딩’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다. 이 회사는 그 수익을 기반으로 광물을 생산하는 업스트림 자산을 사들이며 비즈니스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일반적으로 에너지 시장 진입 통로를 업스트림에서 찾는 기업들과 달리 ‘트레이딩’이라는 샛길로 진입해 거꾸로 업스트림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을 밟고 있는 셈이다.

글렌코어가 1974년 실물 트레이딩 전문업체로 출발할 무렵만 하더라도 에너지원의 거래가 활성화돼 있지 않았다. 하지만 글렌코어는 유연탄, 액화천연가스(LNG) 등의 거래를 활성화시키면서 시장을 형성하는 역할을 했고, 이를 기반으로 원자재 가격 등락에 관계없이 차익거래(arbitrage) 수익을 안정적으로 창출해냈다. 그 수익을 기반으로 최근에는 320억 달러(약 33조6000억원)에 광산업체 엑스트라타를 인수해 통합 사업모델을 구축함으로써 경쟁 우위를 선점했다. 2011년 글렌코어의 기업공개 때 아부다비 국영투자회사와 유수의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이 투자에 참여했던 것도 앞으로는 업스트림이 아닌 트레이딩 전문기업인 글렌코어가 에너지 시장의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과 E1과 같은 국내의 전통적인 에너지 기업들도 글렌코어의 모델을 학습 중이다. 원유나 LPG 등의 국제가격 흐름을 예상해 제품을 사거나 판매 시점을 조절해 시세차익을 얻는 트레이딩 부문을 강화해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자회사 SK에너지의 트레이딩사업부를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SKTI)로 분사시켜 원자재 전문 트레이딩 기업으로 키우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LPG 수입회사인 E1도 해외 시장에서 차익거래에 주력하면서 지난해 전체 매출에서 트레이딩 비중이 절반을 넘어섰다. LPG 수요가 점차 감소하는 에너지 시장의 변화 속에 기존 원자재 수입 판매만으로는 성장성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보고 트레이딩이라는 전문 영역에서 해답을 찾고 있는 것이다.
 
격변하는 시장에서 빠른 의사결정 필요
글로벌 에너지 시장은 큰 변화를 맞고 있다. 미국이 천연가스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전환하고 있고,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저비용 청정에너지원으로 제2의 르네상스기를 맞는 듯하던 원자력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많은 국가에서 정체 혹은 감축 기조로 돌아섰다.

반면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는 최근 8년 새 다섯 배 넘게 늘었다. 비전통적 에너지원의 개발 열풍은 다양한 자원개발 기술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시장 변화는 자원개발(E&P)업의 변화도 이끌어내고 있다. 과거에는 소수의 업체가 원유·가스 자원 개발 시장을 과점하는 단순한 구도였지만, 2011년의 경우 심해에서 발견한 자원 중 단 25%만이 메이저 업체들에 의한 것이었다. 그만큼 중소형 신흥 업체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설립된 스웨덴 업체인 룬딘 페트롤리엄(Lundin Petroleum)이 불과 10년 만에 탐사개발 성공률 41%, 13억 달러(약 1조3000억원) 규모의 매출을 내는 기업으로 성장한 것도, 단순한 의사결정 구조와 조직 운영을 기반 삼아 상대적으로 저개발된 노르웨이 인근 북해 자원개발 사업에 집중 투자한 덕분이다.

이들이 국내 에너지·석유화학 기업들에 시사하는 바는 크다. 시장 격변의 중심에서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고, 그 연쇄반응을 통해 성장할 기회는 아직 충분하기 때문이다. 변화 속도가 빠를수록 기회 발굴과 의사결정 역시 빨라야 한다. 룬딘 페트롤리엄이 단순한 의사결정으로 기민하게 움직여 북해에 역량을 집중한 것처럼 비전통 에너지시장에서 기회를 찾으려면 그에 맞는 의사결정 구조와 실행이 요구된다. 그런 의미에서 국내 기업들의 사업모델 변화와 전문영역 분사 등과 같은 움직임에 거는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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