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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농가의 눈물 … 동반성장의 역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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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경북 서안동농협 농산물종합유통센터에서 농협 관계자와 농민이 수매할 콩을 살펴보고 있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콩을 원료로 하는 두부와 된장 등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한 여파로 국산 콩 수요가 줄어 가격이 떨어져 농민들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지난 18일 경북 안동시 서후면 대두서리. 마을로 들어가는 길 옆 논밭에는 탈곡을 끝낸 콩깍지가 군데군데 수북이 쌓여 있다. 이 마을은 전국 콩 생산량 1위인 경북에서도 콩으로 이름난 마을. 명칭에 콩을 뜻하는 대두(大豆)가 붙었을 정도다.

 예년 같으면 지금은 마을에 활기가 돌 때다. 농협이 콩을 사들이는 계절이어서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마을회관에 모인 주민들에게 콩 이야기를 꺼내자 농민들은 “말도 마라”며 고개를 저었다. 1만3000여㎡(4000여 평) 밭에서 콩 80부대(1부대는 40㎏)를 수확한 김석호(67)씨는 “값이 지난해의 반 토막”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수매철인 요즘 안동농협이 사들이는 콩값은 장려금 300원을 보태 1㎏에 3900원. 지난해 6300원에 비해 40%가량 폭락했다. 농민 김두섭(72)씨는 “헐값에도 다 팔지 못했다”며 “내년에 또 콩 농사를 지어야 할지 막막하다”고 걱정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산지 가격 하락의 영향을 받아 국산 백태 도매가 역시 지난해 이맘때 35㎏ 중품 기준 20만5400원에서 현재 14만9000원으로 떨어졌다.

 왜 그렇게 값이 떨어졌느냐는 물음에 농민들은 “풍년이 들어 생산량은 늘었는데 소비가 크게 줄어서”라고 답했다. 콩을 대량으로 사들이던 두부·된장·고추장 제조 대기업들이 국산 콩을 사지 않아 난리가 났다는 것이다. 동반성장위원회가 두부와 장류 제조를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지정한 여파다. 생산은 늘고 수요는 줄어든 2중고에 콩 농가는 샌드위치 신세가 돼 버렸다.

 구체적인 전후 사정은 이렇다. 동반성장위는 중소기업을 살린다며 콩 가공식품을 중소기업 적합품목으로 지정했다. 2011년 9월 간장·된장·청국장 등이 대기업 확장 자제 품목이 됐고, 그해 11월에는 콩 소비량의 40%를 차지하는 두부가 대기업 확장(포장 두부)과 진입(비포장 두부) 자제 품목에 포함됐다.

이 때문에 두부 시장의 80%가량을 차지하는 CJ제일제당과 풀무원 등이 콩 사들이기를 확 줄였다. 2011년 1만4216t이던 식품 대기업의 국산 콩 구매량은 올해 그보다 33%가량 줄어든 9500t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서안동농협 한현식(46) 콩 수매 담당은 “매년 안동에서 콩을 사가던 대기업이 올해는 한 톨도 사지 않았다”고 전했다. 대기업의 두부·장류 확장 규제로 콩 생산농가가 신음하게 된 것이다.

 대기업들이 이렇게 국산 콩 구매를 줄인 반면 두부나 장류를 만드는 중소기업들은 가격을 이유로 수입 콩만 쓸 뿐 국산 콩은 외면하는 실정이다. 콩 농가에 따르면 중기들은 농협 수매가보다 낮은 ㎏당 3300~3500원을 요구하고 있다. 이마저도 현금이 아니라 3개월 어음으로 결제하겠다고 하는 실정이다.

 농민들은 고민이다. 수확한 콩을 보관할 창고가 없는 데다 연말까지 농협에서 대출한 농약·비료값을 갚아야 한다. 헐값에라도 처분해야 할 형편이다. 상대적 약자인 중소기업을 보호하겠다고 동반성장위가 펼친 정책이 더 힘없는 농민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이다. ‘동반성장의 역설’이다. 참다 못한 콩 농가들은 최근 동반성장위를 찾아가 “대기업이 자유롭게 두부를 만들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아직 반응이 없는 상태다.

 동반성장위가 두부를 중기 적합업종으로 선정한 이후 두부 시장 규모는 줄고 있다. 칼로리가 낮은 웰빙 식품이라는 평에 ‘국산 콩 소비’라는 명분이 더해져 2011년 두부 시장은 전년 대비 14% 성장했다. 그러나 올해는 9월까지 두부 판매액이 전년 대비 3% 감소했다. 콩 농가들이 “앞이 안 보인다”며 갑갑해하는 이유다.

 대기업 규제 이후 중기의 시장점유율 역시 별로 늘지 않았다. 올 들어 9월 말까지 점유율이 20.3%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전체 두부시장이 3% 줄어든 점을 감안하면, 중기 두부제품 판매액 역시 감소했다고 볼 수 있다. 동반성장위 정책이 중기도 살리지 못하면서 농민에게 더 큰 고통을 안긴 셈이다. 안동시 콩연합회 김용탁(65) 회장은 “중기보다 더 힘없는 농민도 상생할 수 있어야 진정한 동반성장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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