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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영희의 사소한 취향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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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올 한 해 칼럼을 통해 소개한 작품 가운데 가장 많은 이들의 ‘좋아요’를 받은 주인공은 일본 만화가 마스다 미리의 ‘여자 만화 시리즈’였다(한가하신 분들은 본지 2월 1일자 28면 참조).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서 속 깊은 물음을 이끌어내는 이 독특한 만화에 주변의 무수한 여자들이 “완전 내 얘기”라며 공감을 표시해 왔다. 물론 “뭐가 재밌다는 건지, 여자들은 뭐 그리 복잡하냐”며 분노한(?) 남성 독자도 있었다. 어쨌건 여성들의 성원에 힘입어 작가의 한국어판 신작이 속속 출간되는 가운데, 연말 선물처럼 도착한 작품이 바로 『밤하늘 아래』다.

 이 만화는 뜬금없게도 우주 이야기다. 하지만 작가의 시선은 거대한 우주의 한 귀퉁이에서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머문다. 예를 들어 ‘별똥별’ 편에는 우연히 별똥별을 보고 돌아와 “이루고 싶은 소원을 생각해보니 하나밖에 안 떠오르는 거예요. 이 회사 그만두고 싶다는 거였어요”라고 무심하게 고백하는 회사원이 등장한다. “만약 별님이 하늘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해?”라고 질문하는 소년에게 엄마는 말한다. “별이 떨어지면 무조건 뛰어야 해. 언제든 달아날 때는 뒤돌아보지 않아도 돼. 살아있는 게 중요하니까.” 별처럼 빛나고 싶다는 아들에게 아빠가 들려주는 대답은 이거다. “모두가 다 반짝반짝 빛을 내지 않아도 괜찮아. 빛나지 않아 다행인 사람도 있을 거고.”

마스다 미리, 『밤하늘 아래』 표지. [사진 애니북스]

 책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우주에 대한 정보도 ‘힐링용’이다. 우리가 지금 보는 별빛은 몇 백 년이나 걸려 지구에 도착한 것이라든가,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시간은 우주 차원에서 보면 무(無)와 다름없다는 이야기 등을 들으면, 순간적으로나마 나의 일상을 지배한 고민이 사소하게 느껴지니까. 우주에는 주변 별들에 밀려 궤도에서 튕겨나가 둥실둥실 우주를 헤매는 ‘떠돌이 행성’도 수천억 개나 존재한다고 한다. 홀로 길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 땐 하늘을 올려다보며 외로운 행성 친구들을 떠올려 봐도 괜찮겠다.

 연말이다. “내년에는 몇 살이지?”라고 묻는 이들에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더 돈 것뿐 아닌가요?”라며 ‘코스모스적 발끈’으로 맞서고 싶어진다. 그러나 아무리 밤하늘을 올려봐도 위안이 찾아오질 않을 땐 우주를 소재로 한 걸작 영화 ‘그래비티’의 명대사를 되뇔 수밖에 없다. “어느 쪽이든 확실한 한 가지는 (새해도) 엄청난 여행이 될 거라는 사실이다…. (숨 한번 크게 몰아 쉬고) 아임 레디(I’m ready).”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