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그럼 있다가 뵈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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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친한 후배와 점심을 같이하기로 약속한 날, 사무실을 나서니 날씨가 추워져 싸늘한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시청 앞으로 두 팔을 허위허위 흔들며 조금 빨리 걸었다. 소박한 점심을 즐겁게 먹고 헤어지는데, 후배 왈, “그럼 있다가 뵈요.” 아 참, 그러고 보니 오늘 저녁에 모임 약속이 있었지. “그려―.”

 우리가 말로 할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글로 적으면 맞춤법에 어긋나는 표현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럼 있다가 뵈요”는 별문제가 없을까. 우선 ‘있다가’를 보자. “밖에 눈이 오니 여기 조금 더 있다가 눈이 그치면 나가자”라고 할 때처럼 ‘있다가’는 용언 ‘있-’에 ‘어떤 동작이나 상태 따위가 중단되고 다른 동작이나 상태로 바뀜을 나타내는 연결어미’인 ‘-다가’가 결합한 형태다. ‘있다가’는 ‘어떤 상태를 유지하다가’를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있다가’와 똑같은 발음이 나는 ‘이따가’도 있다. 이 말은 어원적으로 보면 ‘있-’에 어미 ‘-다가’가 결합된 말로 보이지만, 현대 국어에서는 ‘있다’의 의미에서 이미 멀어져 다른 뜻, 곧 ‘조금 지난 뒤에’라는 뜻의 부사로 굳어져 쓰이기 때문에 원형을 밝히지 않고 ‘이따가’로 적는다. 그러니 “이따가 보자”라고 하면 “조금 지난 뒤에 보자”라는 의미다. ‘이따가’는 ‘이따’로 줄여 쓸 수도 있다. 따라서 “그럼 있다가 뵈요”에서 ‘있다가’는 ‘이따가’로 바로잡아야 한다.

 다음 ‘뵈요’를 보자. ‘뵈다’는 ‘보이다’에서 온 것으로 ‘웃어른을 대하여 보다’라는 뜻이다. ‘뵈다’의 뜻풀이는 ‘웃어른을 대하여 보다’이지만 그 속뜻은 내가 웃어른을 ‘보는’ 것이 아니라 웃어른에게 나를 ‘보이는(보여주는)’것이다. ‘뵈요’처럼 어간 ‘뵈-’ 뒤에 어미가 붙지 않고 바로 보조사 ‘요’가 붙을 수는 없다. 어간 ‘뵈-’ 뒤에 어미 ‘-어’가 붙은 ‘뵈어’의 준말인 ‘봬’ 뒤에 ‘요’가 붙은 것이므로 ‘봬요’와 같이 적어야 바르다. 그래서 “그럼 있다가 뵈요”는 “그럼 이따가 봬요”라고 해야 정확한 표기가 된다. 이 ‘뵈다’보다 더 겸양의 뜻을 나타내는 말로 ‘뵙다’가 있다.

최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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