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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시간 절반 딴 일에 쓰는 직장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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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이강태
비씨카드 사장

역사적으로 볼 때 각국의 경제위기에 앞서 생산성의 정체가 먼저 나타났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저성장도 따지고 보면 생산성 저하에서 기인한다. 수요가 줄어 생산성이 낮아졌다는 해석도 가능하나 글로벌 기준으로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잘되는 회사는 경기에 관계없이 잘나간다. 글로벌 승자들은 높은 생산성을 강력한 경쟁력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컨설팅 회사인 언스트&영이 올 상반기 발표한 직장인 생산성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은 하루 업무 시간 중 업무와 관련 없는 개인적 활동으로 1시간54분을 쓴다. 불필요하거나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업무에 쓰는 시간도 2시간30분이다. 업무 시간의 절반 정도를 업무에 몰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보고서를 보면 사무직 생산성 향상의 필요성이 다시 한번 느껴진다. 우리나라 경제는 그동안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의 대부분이 제조업 생산성 향상을 통해 이뤄진 것이다. 올해도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기능올림픽에서 18번째로 종합 우승을 했다고 한다. 생산 부문은 어느 정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그동안 추진된 여러 경영혁신(제안제도·품질경영·6시그마 등)도 대부분 생산 현장에서 이뤄졌다. 생산 현장은 측정이 비교적 용이하기 때문이다. 반면 사무기술직은 그렇지 않다. 사무직 생산성은 생산직처럼 정량적으로 측정하기 어렵다. 그러니 생산성 향상을 독려하기도 매우 어렵다. 많은 혁신노력이 사무실에서는 일종의 캠페인으로 끝나고 마는 이유다.

 낮은 생산성은 결국 낮은 수익성으로 귀결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1차적인 방법은 생산성 낮은 직원을 줄이는 것이다. 그러면 생산성과 수익성이 동시에 올라간다. 그러나 이는 노조의 반발로 쉽지 않다. 또 하나의 방법은 창의성을 북돋워 새로운 시장과 고객을 창출해 돌파하는 것이다. 국내가 어려우면 해외로 나가고 직원들에게 강력한 동기 부여를 하고 부수업무를 늘려 수익을 올리면 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사무기술직의 생산성 향상이 전제가 돼야 한다. 기획 부서에서 아무리 좋은 전략을 수립해도 절절한 실행이 전제되지 않으면 다 물거품이다.

 어떤 이들은 창조경영 시대에 생산성 향상이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창의성 역시 생산성을 전제로 한다. 창의는 어디서 오는가. 젊은 직원들의 자유분방함에서 온다고? 아니다. 창의도 어떻게 남다른 생산성을 올릴까 치열하게 고민할 때 나온다. 하루하루의 업적 창출에 몰입하고 어떻게 다른 동료, 다른 경쟁사보다 더 많은 산출물을 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창의적인 생각과 방법이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창조경제는 창의적인 젊은이들의 도전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창업하는 젊은이의 생산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주인 의식을 가지고 절실한 마음으로 일하는 창업자는 생산성이 이미 극대화돼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이들은 대기업이나 공기업에서 노조의 보호를 받으면서 자신의 부가가치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고 있는 사무직 직원이다.

 한국에 있는 글로벌 투자사 직원들은 오전 7시까지 출근하고 밤 12시까지 일한다. 토요일도 거의 출근한다. 오전 9시와 오후 6시에 엘리베이터가 만원인 국내 금융회사가 과연 이들과 경쟁해 이길 수 있을까. 얼마 전에 하버드 경영대학원(MBA)을 나온 국제카드사 사장과 저녁을 했다. 하루 15시간씩 일한단다. “회사의 모든 문제는 근면(Hard working)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이 있다고 했다. 생산성이 근무 시간을 늘린다고 향상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러한 임직원들의 절절한 노력이 없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1~2위를 다투기 어려울 것이다.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하지 않고는 우리는 생존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글로벌 경쟁사와의 생산성 비교에서 우위에 있어야 한다. 노조가 있는 대기업·공기업의 사무기술직 부문에서 생산성 향상 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가야 한다. 그래야 글로벌 경쟁력 있는 대기업·공기업이 많아지고, 대규모 고용이 창출된다. 그게 바로 한국 경제가 세계 경제에서 다시 도약할 수 있는 길이다.

이강태 비씨카드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