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사들 "코리안 맘에 들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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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주한 외국기업들이 국내 시장만의 독특한 상황과 한국 소비자들의 기호를 철저히 분석하는, 이른바 '맞춤형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제품이나 서비스의 경쟁력만 믿고 본사에서 일괄적으로 짠 마케팅 전략을 밀어붙이다가 고전하는 경우가 적지 않자 나타나는 움직임이다.

실제로 최근 한 외국 전자업체는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한국 말로 번역된 제품 설명서 하나 제대로 첨부하지 않아 소비자에게서 따돌림당하는 사례도 있었다.

일본 가전메이커인 JVC코리아 이데구치 요시오 사장은 "나라마다 말이 틀리듯 소비자들의 취향도 다르다"며 "같은 제품이라도 가급적 한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특성을 부각하는 것이 로컬마케팅의 중요한 원칙"이라고 말했다.

한국 소비자는 다르다=미국계 에어컨업체인 캐리어코리아는 광주광역시 하남 공장에 따로 디자인 조직을 두고 있다.

국내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는 색상과 에어컨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다.

이 회사 문창모 마케팅 팀장은 "한국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슬림형 에어컨의 경우 다른 나라에선 매장용이나 업소용으로 사용되지만 거실 문화를 즐기는 한국 소비자들에겐 가정용으로 가장 많이 팔린다"며 "한국형 슬림형 에어컨 디자인을 집중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세계적인 패스트푸드업체인 맥도널드도 닭요리의 일종인 '맥너겟'제품을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재료를 바꾸었다.

맥도널드 관계자는 "뻑뻑한 가슴 살보다 닭다리 살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입맛을 생각해, 5년 전부터 다른 나라 제품보다 가슴 살 함량은 줄이고 다리 살을 크게 늘렸다"고 설명했다.

영국계 체형 관리업체인 마리프랑스바디라인의 국내 영업 방침도 다른 외국지사와는 조금 다르다. 한국 여성들이 훨씬 마른 체형을 원하는 데다 단순히 몸무게를 줄이는 것보다 아름다운 체형을 가꾸는 데 더 관심을 많이 보이고 있기 때문.

이 회사의 한국 지사는 이런 점을 고려해 단순히 살을 빼는, '바디슬리밍'서비스보다 특정 부위의 체형을 집중적으로 관리해 주는 '바디 디자이너'프로그램에 주력하고 있다.

한국 소비자의 취향이 제품 컨셉트도 바꾼다=미국계 차 메이커인 포드코리아가 국내에서 시판하는 링컨 타운카는 미국에서는 자가운전용으로 가장 많이 팔리는 자동차다.

그러나 국내에서 시장조사를 한 결과 이 차를 사려는 국내 소비자 대부분이 운전사를 고용해 뒷좌석에 타는 사람들인 것으로 확인되자 자동차 기능과 제품 홍보 전략도 바꿨다.

포드코리아 정재희 사장은 "오디오컨트롤 기능과 온도 조절 기능 등 각종 버튼을 뒷자리 주변에 따로 설치하는 등 뒷좌석 기능을 대폭 강화하고 마케팅도 이에 맞춰 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임러크라이슬러가 시판에 들어간 다지 다코타 모델도 역시 마찬가지 상황. 이 차는 미국에선 가장 대표적으로 알려진 실용 트럭으로 고객층이 농부나 전원 생활을 즐기는 사람들.

그러나 한국 시장에선 자영업자나 레저 활동을 즐기는 소비자를 타깃으로 집중 공략하고 있다. 이 회사 허지연 차장은 "한국에서는 고급층 소비자들 위주로 공략하기 위해 가죽 시트와 4도어 모델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며 "할리데이비슨 동호회 등 여유 있는 전문직이나 중산층 이상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서만 파는 제품 속속 등장=애완식품 사료 메이커인 네슬레 퓨리나 팻케어는 한국의 대표적인 토종 동물인 진돗개만을 위한 개 사료 제품을 최근 출시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경기도 송탄 공장에서 진돗개의 특성과 체질을 분석해 만든 사료를 따로 만들어 팔고 있다"고 설명했다.

호주 축산공사도 지난해 1월부터 찜 갈비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을 위해 찜 요리가 가능하도록 따로 가공한 '시드니 갈비'를 팔고 있다.

이 회사 조한실 차장은 "찜 요리를 즐기는 한국과 아시아 시장을 겨냥해 호주 축산공사에서 개발한 상품으로 반응이 너무 좋아 본토인 호주로까지 역수출할 계획도 있다"고 말했다.

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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