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학생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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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국의 대학생들이 조용해지고, 정치적으로 숙연해지고 있다고 한다. 적어도 미 교육위의 조사결과로는 그렇다.
바로 엊그제까지 반사회적인 「히피」문화를 구가하고 격렬한 반전「데모」에 앞장섰던 그들이다. 그들이 조용해지다니 어떤 의미에선 약간 기이하게 들리기도 할 것이다.
한 사회학자는 그들의 낭만적 반문화를 기성문화가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보고있다.
반문화란 따지고 보면 잔뜩 변화된 체제문화에 대한 공격에서 나왔다. 「필립·슬레이터」도 양자를 이렇게 구별하고 있다. 『체제문화란 인간보다 물질을, 인간의 욕망보다 기술적 요청을, 협조보다 경쟁을, 분산보다 집중을, 소비자보다 생산자를, 만족보다 수단을 보다 중요시하는 문화이다. 반문화는 그 관계를 역전시킨 것이다….』
만약에 체제문화가 내부적인 탈바꿈을 하게 된다면 반문화가 굳이 공격성을 띠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요, 대학도 조용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진단을 내린 미국의 사회학자는 많다. <반문화의 형성>의 저자「이어도·로조크」가 그렇고「찰즈·레이치」가 또한 그렇다.
그들은 반문화 운동이 체제문화의 가치관을 크게 변모시켜 나갔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 대학생들의 반문화는 조금도 기존문화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제임즈·스페이츠」·「자크·레빈」등은 말하고 있다.
오히려 67년부터 69년 사이에 나온 문학작품들을 분석해 보면 더욱 체제문화가 굳혀져가고 있다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가령 71년에 있던 조사로는 지난 20년 동안의 미 대학생들이 본 「행복한 생활」에 대한 생각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또한 70년에 그들이 실시한 조사에 의한다면 미국의 「화이트·칼러」및「블루·칼러」족들은 여가를 자기표현을 위해서는 별로 쓰지 않고 오히려 시간외 수당을 더 받으려고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또 미국의 중간층이 장발, 턱수염, 「블루진」등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도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라고 보고있다. 그것은 미국사회가 이전처럼, 또는 전보다도 더 체제적 가치체계와 생활양식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숨겨 두고 있는데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도 단정을 내리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설사 체제문화가 조금이라도 반문화를 받아들이고 있다 하더라도 적어도 아직은 그런 증거가 눈에 띄지는 않고 있다고 말하고있다.
대학이 조용해졌다고 반드시 반가운 일은 아니다. 어쩌면 그저 좌절과 체념과 거세의 악순환 속에 잠겨버린 때문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체제문화와 반체제 문화의 대립은 언제나 있다. 내일의 꿈이 있는 동안에는 말이다. 대립과 긴장이 없다고 마냥 반겨야 할 일이 아니라는 어느 사회학자의 말을 씹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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