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부설 동서 문제연구소 제2회 『세미나』북한체재|주민의 가치관 변천|주제발표 김철수(서울대 법대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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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번 「세미나」에서 가장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것은 김철수 교수가 발표한 북한주민의 가치관에 관한 문제이었다.
김 교수는 먼저 북한 당국의 가치관 개조과정을 4단계로 나누어 건국사상 총동원 운동기(47.2∼53.7), 계급 교육시기(53.7∼58.12), 공산주의 교육기(59∼70년 5차 전당 대회) 공산주의 교육 강화기(70년 5차 전당대회 이후)로 분류했다.
이것은 북한 당국이 주민들에게 주입시킨 선전교양의 내용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기 때문에 분류방법 자체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가치관은 으례 사회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오던 기존관념을 완전히 무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부로부터 거의 완전히 차단된 사회의 구성원들을 연구대상으로 한만큼 이들의 의식구조를 수량화 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김 교수의 분류방법은 공감을 얻었다. 김 교수는 현재 진행 되고 있는 제4단계의 사상개조작업이 이른바 「사회주의적 도덕관의 확립』 『사회주의적 생산양식』과 『혁명적 약관주의』의 고치에 있다고 분석했다.
사회주의적 도덕관에 위배되는 것, 예컨대 전통적인 가족중심주의 사상이라거나 조직생활을 거부하는 자유, 개인주의는 철저히 배격되며 혁명의 장래를 의심하는 비관주의자도 심한 탄압을 받는다고 보고했다.
따라서 북한주민들의 가치관의 특징은 당국의 이와 같은 주입식 교육과 인간 본래의 욕구가 빚어내는 갈등에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 일례로 자식과 부모가 서로 떨어져서 살다시피 하는 이른바 「사회주의적 가정」을 들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생활양식을 이상적이라고 여기게끔 하는 사상개조가 과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에 부정적인 답변을 내렸다.
그러나 윤근식 교수(성대)는 이 문제와 관련, 주입식 교육의 강제성이라는 측면에 주민들의 자발성이 과연 전혀 없는 것인가에 의문을 제기했다.
윤 교수는 서독의 「크리스티완·루수」가 분석한 동독정권과 주민 사이의 교와 관계를 원용, 공산주의 정권이 전체주의적 지배체제에서 권위주의적 지배체제로 변하고 「이데올로기」와 현실의 차이가 점차 해소될 경우 주민들의 가치관이 자발적 의사에 의해 변할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권위주의적 체제의 전형적인 예인 사교집단이 비록 조작된 것일지라도 신도들의 자발성에 의해 유지된다는 사실과 김일성 개인 숭배 체제의 지배관계 사이에 어떤 유사성이 지적된 것은 이번 「세미나」의 큰 성과로 평가되었다.
또한 김 교수가 지금까지의 통설을 좇아 40대 이상과 40대 이하의 세대가 가치관에 있어서 질적 차이를 갖고 있을 것이라고 평가한 점도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김남식씨(「아시아」문제연구소)는 40대 이상이 공산체제 이외의 「무엇」을 경험했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반드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동경일 수는 없다고 논평한 것이다.
김씨는 그 이유로 이들이 경험했던 다른 체제가 일본 군국주의의 식민통치였을 뿐임을 강조, 오히려 40대 이하의 세대보다 자발성의 강도가 더 강할 수도 있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가치관 문제에서는 논쟁의 촛점을 이룬 것은 북한 당국이 자유화의 물결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그리고 주민들은 이에 대해 어느 정도의 욕구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김 교수는 최근 김이 종래와는 달리 비판이나 투쟁 대신 「단결」이라는 말을 「클로스업」시키고 있다는 점을 중시, 자유화에의 요구와 그것을 받아들이려는 태세가 극히 적기는 하나마 진전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김 교수는 북한의 생산력이 향상되어 물적 토대가 변할 경우 자유화에의 물길이 크게 고양될 수도 있으나 그것이 북한의 지배체제를 내부로부터 붕괴시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전망했다.
한가지 흥미 있는 사실은 이번 「세미나」에 참석한 주제발표자와 토론 참석자들이 모두 「사회주의적 도덕」을 실현 불가능한 「테제」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 이유를 인간의 속성에서 구하거나(황성모 교수의 경우) 공산국가의 선례에서 구하는(이인호 교수) 차이는 있었지만 원천 불능이라는 점에는 견해가 일치되었다.
자본주의적 「습관의 힘」을 없애야만 비로소 공산주의가 가능하고, 여기에는 수세기의 세월이 걸릴지도 모른다고 말한 「레닌」의 얘기는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또한 「단결-비판-단결」의 원래 「인민내부의 모순」(인민과 비인민간의 적대적 모순이 아닌)을 해결하는 고전적 방식이라는 점에 주목한 사람도 없었다.
만약 이러한 관점에서 봤더라면 김일성이 최근 투쟁대신 단결을 강조하는 이유가 전혀 다른 차원에서 비판, 분석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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