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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병치료위해 각성제 밀매단에 얽혀든 원폭병 여인의 기구한 역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이번 국제 각성제 밀수 사건은「피폭자 구원 일한협회」를 발촉하게까지 한 원폭 피해자 손귀달여인(44·부산시 서구남부민동)이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한 집념으로 국내 조직과 일본 조직을 연결시켜 이루어진 사건이었다.
경찰은 국내조직 제 3연락책인 손여인이 5년전에 밀항을 기도, 일본인과 접촉이 있었던 점으로 미뤄 범행이 벌써 오래전에 이뤄진 것이 아닌가고 추궁하고 있지만 아직은 뚜렷한 단서를 못찾고 있다.
경찰은 손여인이 국내조직과 일본조직 사이의 밀매 「루트」를 만든 중심인물이라는점과 밀항기도 이후 일본인과 접촉이 잦았다는데 중점을 두고 계속 수사중-.
○…손여인은 자신의 말대로 「원폭이 안겨준 신체적 악조건에서 헤어나기 위해 현해탄을 헤매는 방황자」였다.
68년 9월30일 밀항을 기도했다가 다음달인 10월 1일 「야마구찌껭」경찰에 잡히고 그달 10일「야마구찌」지방 재판소에 밀입국혐의로 기소됐지만 「시모노세끼」영사관의 보석신청으로 보석이 허가되어 풀려나왔다.
손여인은 19일 「히로시마」에 있는 원폭병원에 입원했다.
한편 손여인의 이같은 사정이 당시 일본신문에 보도되자 재일교포와 일본인들은 「피폭자구원 일한협회」를 구성, 한국인 피폭자의 구호운동이 벌어지게 됐다.
손여인은 당시 약 20일간 입원했다가 강제 송환됐다.
○…45년 8월6일의 피폭당시 손 여인은 「히로시마」제 2고등어학교 2학년이었다.
일제의 학도동원으로「미쓰비시」조선소에서 강제노동을 하다 까무러쳤다.
이날 아버지와 어머니(동또순·78·반신불수)오빠 손진삼씨(원자병으로 사망) 손진두씨(46·원자병으로 일본 병원에 입원중) 아우(사망) 등 일가족 6명이 재생을 알길없는 원폭의 제불이 됐다.
당시에는 상처만 나으면 살아날 줄 알고 손씨 가족은 중전과 함께 귀국했다.
그러나 증세는 귀국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두 오빠의 증세가 날로 악화돼 그 이듬해에 다시 일본으로 되들아 갔으나 아버지와 큰오빠는 끝내 이국 하늘에서 눈을 감아야 하는 원혼이 쨌고 작은오빠 진두씨가「히로시마」병원 병상에서 뒤척이고 있고 자신과 어머니가 부산에서 이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손여인은 귀국 직후인 21세때 오모씨와 결혼, 두아이까지 있었지만 몸이 날로 쇠약해 남편과 이혼, 아이들은 어머니에게 맡기고 병을 치료하기에 발버둥쳐왔다.
○…손여인이 일본밀수조직의 한사람과 알게된 것은 68년 밀항때의 일.
일본정부와 교포, 일본인들이 그에게 동점의 구원운동을 펼때 이 구원의 손길 가운데 이번 밀매단의 일본측 운반책인「사지마·사찌고」여인(28)이 끼여있었던 것이다,
귀국 후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손여인은 일본에서 불붙던 구원의 열이 식어가자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염원도 날로 멀어져가는 것만 같아 안타까와했다.
그러던 중 지난 연말 밀항당시 자신을 취재했던 「후지자끼」란 일본인기자의 주선으로 「도오꾜」에서는 「오까사까」란 여인으로부터 진단을 위한 초청을 받았다.
이 초청을 받은 손여인은 일본에서 머무르는 동안의 편의를 위해 마침 연락이 된 「사지마·사찌꼬」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정당한 방법으로는 1개윌에 걸친 진단과 이에 따른 처방을 받아볼 수 없다고 판단, 결국 끔찍한 범죄조직의 중심인물이 됐다는 것이다.
손여인은 23일 유치장안에서 『생애를 두고 계속되는 일본으로 인한 시련에서 나를 구해달라』고 목멘 호소를 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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