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 돈 노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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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놀이」와 「노름」은 그 말과 감이 이웃 사촌이라고 할 수 있다. 그건 다같이 사람이 생산적인 활동에서 해방되었을 때, 그 여가를 즐기려는 유희본능에서 나온 것이다.
노름의 출발점이 이처럼 놀이와 마찬가지로 즐거움을 찾으려는 사람의 본질적인 욕구에 뿌리박고 있는 것이라 한다면 그것을 절대적으로 금압 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불가능·불필요한 일이라 할 것이다.
다만 노름에는 놀이와는 달리 악으로 발전될 수 있는 어두운 면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보다 밝은 놀이로 대치하자는 것이 사회적 제재의 기본적 발상이 되고 있다.
어린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건전한 놀이에 속한다. 장난감은 어린이들의 호기심과 지능발달의 자극이 되고 그 흥미로운 매력으로 하여 어린이들의 정신적인 집중력을 길러준다. 좋은 장난감은 그렇기에 유효한 교육의 방편이 된다.
그런데 최근 서울을 비롯한 여러 지방에서는 초등학교 아이들이 장난감 돈을 가지고 어른들의 노름 흉내를 내는 놀이가 성행하고 있다고 보도되고 있다. 얼른 듣기에는 아이들의 하찮은 장난이라고 흘려 버릴 수도 있으려니 생각되기도 하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비록 따고 잃고 하는 돈이 진짜 아닌 가짜 돈이요, 또 그래서 이들의 노름이 진짜 도박 아닌 가짜 도박이라 하더라도, 이 같은 장난감 돈 노름이 아이들의 마음에 새겨놓는 영향은 가짜 아닌 진짜의 도박심리의 그것이다.
가짜노름과 놀이의 차이는 어린이들의 세계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눈에 띄지 않는 갈림길이라 하더라도 그 어린이들이 자라면서 이 갈림길의 벌림새는 엄청난 것이 될 수도 있다.
가짜가 되었건, 진짜가 되었건, 노름에서 익힌 사행심리는 어린이들의 문제해결에의 진지한 노력·인내·성취심리를 위축시킨다. 사행심이란 원래 가장 짧은 시간 안에 높은 욕망목표의 달성여부에 대해서 단판 승부를 보자는 심리이다. 거기에는 인내나 지성이 필요 없다. 가짜 노름을 배워 일단 이 같은 사행심에 젖어버리면 그것이 아이들의 지성이나 인내심을 기르는데 결정적인 지장을 주게 되리라는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어린이들 세계에 이처럼 장난감 돈놀이가 성행하고 있다는 것은 그 책임이 전적으로 어른들에게 있다.
장난감 돈 노름은 다름 아닌 어른들의 돈 노름의 모방이다. 성인사회의 비뚤어진 도박풍조가 그대로 어린이들에게 노출이 되고 있다는 증좌다.
직장에 나가는 대다수 가장들은 주중엔 아이들의 가정교육은 온통 가사에 쫓기는 주부에게만 내맡겨 버리고, 1 주일에 겨우 한번 가족과 더불어 지낼 수 있는 주말에는 아이들 보는 앞에서 도박으로나 심심풀이를 하는 작폐가 없는지 반성해 볼일이다.
그러나 장난감 돈 노름성행의 가장 큰 책임은 그 같은 장난감 돈을 만들어 파는 상인들에게 있다. 놀이와 노름을 분간 못하는 아이들의 호기심 속에 파고드는 상혼이다. 여기에는 단속이 필요하다고 본다. 장난감도 하나의 유효한 교육수단이라 한다면 이 같은 교육수단을 무분별한 잡상들의 이기심에 내맡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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