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취업난·정치에 불만, 억눌렸던 분노 표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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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학가에서 유행하는 대자보 붙이기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소셜미디어네트워크(SNS)식 짧은 의사소통에 익숙한 젊은 세대가 한계를 느낀 것”이라고 분석했다.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교수는 “지인들에게만 공개되거나 불특정 다수에게 퍼지는 SNS와 달리 대자보는 청년·학생으로 타깃층이 명확하다”며 “일자리 불안감 등 젊은 세대의 공통된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고 말했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손으로 쓴 대자보는 현장에서 강렬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군중 결집 효과가 크다”며 “아날로그식 의사소통이 젊은 세대에게 신선하면서도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진 것 같다”고 했다.

 또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자보 붙인 것을 찍어 SNS로 인증해 다른 사람의 참여를 다시 이끌어 내는 새로운 형태의 의사소통 방식이 등장했다”고 말했다.

 고려대 조형학부 08학번 양지원(25·여)씨는 “대자보가 붙은 것을 본 것이 3~4년 만”이라며 “이슈에 대한 찬반을 떠나 자기 목소리를 낸다는 것에 학생들의 마음이 움직인 것 같다”고 풀이했다. 실제로 고려대에 붙은 대자보들은 주씨의 의견에 일방적으로 공감하기보다 역사 교과서 문제, 4대강 문제 등 정치적 이슈부터 성적·취업의 중압감을 토로한 글 등으로 다양했다.

 하지만 송경재 교수는 “최근의 현상은 선거 기간마다 젊은 층 사이에 투표 인증샷이 유행하는 것처럼 단기간의 이벤트로 끝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근본적으로 청년들이 제기하는 불안정한 일자리나 정치 불신 등의 문제에 대해 기성세대가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자보는 군중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했다. 19세기 프랑스에서 왕당파에 반대하는 파리 시민들이 신문 등 대중매체를 통하지 않고 자기 주장을 펴기 위해 대자보를 쓴 것이 시작이다. 현대에 들어서는 1966~76년 중국의 문화 대혁명기에 마오쩌둥을 옹호하고 덩샤오핑 등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이용됐다. 우리나라에서 대자보는 80년대 대학가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었다. 90대 이후에는 정치적 문제보다 학내 문제를 비판하는 데 쓰였다. 2000년대 들어서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가 발달하면서 횟수가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이유정·장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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