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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의 불매 작전으로 파문|초음속「콩코드」여객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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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초음속 여객기「콩코드」의 판매문제 때문에 미국과 영-불 사이가 자칫 험악해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영-불 양국이 자신의 과학기술과 국력을 기울여서 천년만에 만들어 낸 이 비행기가 미국계 회사의『고의적인 불매작전』으로 암초에 걸리자 영·불이 무역전쟁으로「에스컬레이트」할 듯한 태세를 보인 것이다.
싸움의 불씨는 지난 1월31일 미국의 대 항공회사인「팬·암」과 TWA가 기왕에 주문하기로 약속했던 13대를 모두 취소 한데서 발단되었다.
그러지 않아도 주문이 작아서 허둥지둥하던 판에 세계 항공업계를 주름잡던 대회사가 계약을 취소한 것은 거의 치명적인 타격이라 할 수 있었다. 생산단계에 있던 13대의 처리도 문제려니와 대회사의 눈치만 살피고 있던 군소 항공회사가 덩달아 손을 움츠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영-불 양국은「콩코드」기의 개발에 지금까지 25억「달러」를 쏟아 넣었으며 현재도 1주일에 3백20만「달러」씩을 붓고 있다. 관계 전문가들의 계산에 의하면 이만한 밑천을 뽑으려면 적어도 3백대정도를 팔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번 미국계 회사의 기습으로 3백대는커녕 30대도 어렵게 된 것이다.
「콩코드」기가 초음속 시범 비행에 성공한 것은 약 2년 반전인 69년 10월1일. 그 뒤 세계 각지를 날아다니며「쇼」를 벌인 결과 주문과 상담이 80대에 이르는 대성공을 거뒀다.
그러나「팬·암」과 TWA가 계약을 취소하자 형세는 단번에 역전,「돈더미에의 꿈」은 그야말로 일장춘몽이 되었다. 23대가 계약 취소되고 영국계의 BOAC와「프랑스」국영인 「에어·프랑스」의 주문 분 9대를 제외한 나머지들도 모두 손을 뺄 듯한 눈치인 것이다.
뜻밖의 낭패를 당한 영-불 양국은 몹시 당황한 기색. 장사꾼들 사이의 거래인지라 정부에서는 잠시 지켜보자는 태도이지만「매스컴」과 일반 여론이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예컨대 영국의 유력지「데일리·익스프레스」는 사설을 통해『미 항공회사들이 국산 초음속 여객기의 출현을 기다리느라고「콩코드」를 외면했다』고 비난하면서 이것이『미국과 「유럽」의 관계를 다년간 악화시킬 것』이라고 위협했다.
「프랑스」의「르·몽드」지는 다분히「콩코드」계획 자체를 반성하는 논조이면서도 유감의 뜻을 감추려 하지는 않았다. 국민들의 여론은「매스컴」보다 훨씬 앞서서『「콩코드」를 안 산다면 당장「코카·콜라」를 안 마시겠다』는 식으로 비약하고 있다.
그러나「콩코드」매입을 거부한「팬·암」이나 TWA사에도 그들 나름의「정당」한 이유는 있다. 이들의 해명에 의하면「콩코드」를 사지 않은 것은 결코『애국적인 동기에서가 아니라 경제성의 문제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콩코드」가 초음속으로 나는 것은 매우 매력적이다. 「보잉」747「점보·제트」기에 비해 가격이 비싸고 수송능력이 뒤떨어진다는 주장이다.
「보잉」747기의 가격이 불과. 2천5백만 「달러」인데 반해「콩코드」는 두 배가 훨씬 넘는 6천만「달러」, 게다가 수송 능력은「점보」기 3백30명의 3분의1도 안 되는 1백8명이므로『비행기 삯을 대폭 인상하지 않는 한 채산을 맞출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설사 주문이 마구 떨어진다고 해도 영-불 양국이「콩코드」계획을 전면 포기하거나 공장 문을 닫을 가능성은 전연 없다고 한다. 워낙, 국민적인「프라이드」가 센 나라인데다가 이 계획에 착수한 동기부터가 다분히 이러한 「콧대세우기」와 관련되었던 만큼『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돈은 얼마든지』나을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사실 영-불 양국이「명예를 지키기 위해서」치러야 할 대가는 대단한 액수일 것으로 추측된다. 영국의「브리스톨」과「프랑스」의「툴루즈」에 있는「콩코드」제작공장엔 6만여 명의 종업원이 매달려 있으며 연관 산업의 종업원까지 계산한다면 10만 명이 훨씬 넘는다는 계산이 된다.
별로 주문도 못 받으면서 이들에게 봉급을 지불한다는 것은 아무리 잘사는 나라라 해도 커다란 짐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외신에 의하면「브리스톨」이나「툴루즈」가운데 어느 하나가 문을 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문제는 지금까지 사태를 지켜보기만 하고 있던 영·불 양국 정부가 어떤 보복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짙다는 데에 있다.
EC(「유럽」공동체)의 지도 국인 영-불이 EC와 미국 사이의 통화·무역갈등을 이용, 보복작전을 편다는 것은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구미의 유력 지나 관계 전문가들도 한결같이 이와 같은 확 전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항공문제 전문가들은 영-불이 대미 경제보복을 하지 않더라도『결국은』승리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어차피「초음속 여객기의 시대」는 조만 간에 이뤄지게 마련이므로 미 계 회사의 불매운동도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소련이 개발한 TU-144 초음속 여객기가 이미 양산체제를 선언한 이상「마하」의 경쟁시대는 피할 수 없는 추세라고 말한다.
어쨌든「콩코드」기의 불매로 인한 파동은 적당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뜻밖의 방향으로 번질 듯한 기세이다.
1월말「히드」영국 수상과「닉슨」대통령간에 합의된『「나토」내부의 무역전쟁 예방』 약속은 생각지도 않았던 복병 때문에 시련을 겪는 셈이다. <외지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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