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문화사, 그 역사와 현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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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왜곡된 한국사를 바로 잡으려는 움직임이 최근 각계에서 활발한 듯 하다. 근래에 일본 땅에서 발굴된 고고학적인 제 발견들이 이러한 움직임에 박차를 가한 것으로 보이나 이는 여러모로 반가운 현상이다.
종래 한국사의 왜곡은 외부로부터, 특히 일본인에 의해서 이뤄졌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것은 주로 한국에 대한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경영을 정당화 내지 합리화시키려는데 그 동인이 있었다. 말하자면 과거의 일본의 편협한 민족주의·국수주의가 이를 주동했던 것이다.
오늘의 권세를 쥔 자가 어제의 역사를 왜곡하는 일은 흔히 보는 일이다. 그것은 비단 제국주의적 침략 전쟁의 시대에 있어서만 성행했을 뿐 아니라 현재에 있어서도 전체주의적 독재국가에 있어 개인 숭배라는 억지 신화를 꾸미기 위해서도 빈번하게 강행되고 있다. 우리는 그 예를 가까이 북한과 여러 「아시아」국가의 경우에서 보고 있다.
그러나 왜곡된 역사는 그를 지탱하는 무상한 권세와 마찬가지로 그 자체가 역사의 물결에 흘러가 버릴 운명에 있다. 그 점에 있어서 한국 사람들은 마치 『세계의 학사가 세계의 법정이다』고 읊은 「쉴러」와 마찬가지로, 예로부터 모든 것을 반정하고 마는 역사의 힘에 대한 겸허한 낙천주의를 지녀 왔다고 할 수 있다. 오늘의 곡직을 후세의 사필에 맡긴다는 우리들의 상용구가 그 같은 역사의 정의에 대한 신념의 표백이라 할 것이다.
왜곡된 한국사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 자칫하면 감정의 앞섬으로 해서 마치 피고 석에 앉는 죄인의 자기 변명처럼 외부 세계에 영상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은 사학계의 뜻 있는 인사들이 항상 염려하던 바였다. 남의 나라의 역사를 왜곡하려는 편협 된 국수주의에 대항하여 또 하나의 편협한 국수주의적, 흑은 「애너크로니즘」적 애국심이 그 시정의 주역이 되어서 아니 됨은 물론이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는 작업은 민족적 감정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이 그리고 냉철한 역사 과학이 발언해야 할 마당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도 한국사의 왜곡을 밝히는 고고학적 제 발견이 일본 땅에서 이뤄지고 거기에 대해서 일본 사학계 내부에서 고대 한·일 관계를 다시 밝히려는 움직임이 태동하고 있다는 것은 여간 다행스런 일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본다면 일본사학을 위해서도 다행한 일이다. 왜냐하면 한국사의 왜곡은 동시에 일본사의 왜곡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한국사를 바로 잡는다는 것은 곧 일본사를 바로잡는 것이다. 현대뿐만 아니라 고대에 있어서도 한나라의 민족사는 동시대적 세계사의 상호 연관 속에서 파악될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고대에 있어서 한국 문화가 일본 문화의 원류요, 한국의 「도래인」이 일본에 대한 문화의 전파자였다 하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고 하자. 그러나 그렇대서 그것이 일본에 대한 한국의 민족적 우월감을 선양케 해주는 근거가 된다고 우쭐대는 것도 불별 없는 일이다. 문화란 높은데서 낮은 데로 흐르게 마련이요 그 방향이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는 어떻든 현재에 있어서의 우리는 밀물처럼 흘러 들어오는 일본 문화를 거의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에 있다. 이 같은 한·일 현대사의 문화 구조를 바로 잡으려 한다면 그것은 과거의 사실을 캐는 역사가들이 능히 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의 한국 민족 전체의 그야말로 역사적 노력에 의해서 좌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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