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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지갑 … 내년에도 내수가 가장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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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다 이렇게 힘든지는 우리도 몰랐다.”

 최근 일간지에 실린 경제활성화 법안 처리 촉구 광고에 참여한 45개 경제·업종단체는 광고를 준비하며 서로 놀랐다. 한 단체의 임원은 “‘기업뿐 아니라 동네 가게도 참여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연락을 했는데 많은 단체가 말을 꺼내기 무섭게 참여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이 광고에는 한국도배사회·목욕업중앙회·세탁업중앙회·서점조합연합회·지하도상가상인연합회·문구유통업협동조합 등 45곳이 참여했다. 동네 지물포·목욕탕·세탁소·서점·문구점 등이 회원인 단체다. 회원이 3000명인 한국인테리어경영자협회 측은 “반송되는 협회보로 미뤄 볼 때 회원사의 20%가 휴·폐업 상태”라고 전했다. 조승연 전국상인연합회장은 “소비를 해야 돈이 돌고 경기가 살 텐데 너나 할 것 없이 어려우니 개선이 쉽지 않다”고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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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기업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를 빼고는 사실상 비상경영체제다. 재계 10위권에 드는 한 그룹은 내년 투자 계획을 짜는 게 힘들 정도다. 올해 전체 계열사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30%가량 줄어들 것으로 분석됐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목표 대비로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적”이라며 “내년 실적은 더 나빠질 것으로 전망돼 그룹 전체가 긴장상태”라고 전했다. 임상혁 전국경제인연합회 본부장은 “몇몇 기업의 착시를 잘못 받아들였다간 큰 문제가 될 것”이라며 “우리 경제가 바짝 말라가고 있다는 광고 문구가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CEO 79% “내년 긴축·현상유지”

 내년 경제에 대한 걱정이 커지고 있다. 15일 전경련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내놓은 기업 조사 결과에도 이런 우려가 고스란히 반영됐다. 전경련이 366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기업 10곳 중 6곳(61.7%)은 내년 경제가 올해와 비슷하거나 나빠질 것으로 봤다. 좋아질 것이란 응답은 38.3%에 그쳤다. 경총이 278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내년엔 긴축 경영(41.3%)이나 현상 유지(37.2%)만 하겠다는 응답이 주류였다. 올해 경기가 좋지 않았던 점, 내년 미국·일본 경기가 올해보다 좋아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인 점을 감안하면 한국만 ‘나 홀로 장기 불황’의 늪에 빠진 셈이다.

 선진국 경제와 엇박자가 나면 심리 위축→내수 악화→투자 부진→고용 축소의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

잠재성장률 뚝 … "경제 노화현상”

 경총 조사에 따르면 이미 기업 경영은 2012년부터 내년까지 3년 연속으로 긴축 경영 모드다. 5%가 당연시됐던 잠재성장률은 3%도 벅찬 상황으로 가고 있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이를 두고 “경제 노화현상”이라고 규정했다. LG경제연구원 이창선 연구위원은 “18개월째 이어지는 저물가까지 감안하면 20년 불황이 시작된 1980년대 후반 일본과 비슷하다”며 “수요 부진이 회복되지 않으면 일본형 디플레이션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계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내년은 ‘선진국은 좋은데 우리는 왜 안 그러냐’는 짜증 섞인 우려가 나올 가능성이 큰 해”(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올해 어려웠으니 내년에는 나아지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는 금물”(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이란 걱정이 쏟아지고 있다.

 관건은 역시 내수다. 내수는 곧 경제 활력을 뜻한다. 그런데 전경련 조사에선 기업의 절반(50.1%)이 내년 경영 계획의 최대 변수로 ‘내수 회복 미흡’을 꼽았다. 10월 대형마트 매출은 지난해 10월보다 6.4% 하락했는데, 지난해 10월의 매출은 2011년 10월보다 이미 6.6% 하락한 상태였다. 내수 부진으로 돈이 안 돌면 투자·고용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내수 악화 → 투자·고용부진 악순환

그나마 성장을 떠받쳤던 기업 투자도 불길하다. 1분기 28.5%였던 국내 설비투자 대비 해외 설비투자 비율은 3분기 35.9%로 확 높아졌다. 국내 투자는 위축된 대신 해외 투자는 늘었다는 얘기다.

 통상임금 범위 확대, 근로시간 단축 등이 본격화되면 인건비 부담에 국내 투자는 더 줄어들 수 있다. 게다가 기업 10곳 중 8곳(79.4%)이 “세무조사가 과거보다 강화됐다”며 기업 주변 환경의 악화를 걱정하고 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민주화법과 정쟁만 난무하고 경제 활성화 노력은 뒷전”이라며 “현 정부와 정치권이 지금처럼 혼선만 야기하면 훗날 한국 경제 퇴행의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영훈·이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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