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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성 지독한 월남인들|【사이공=신상갑 특파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월남 어린이들은 병원에서 주사를 맞을 때도 절대로 울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아뭏든 월남인들의 고통이나 역경에 대한 인내심은 거의 극한에 가까울 정도로 대단하다.
「봉타우」에 있는 한국 이동 외과 병원이나 야전군 병원의 군의관, 또는 간호 장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월남인들은 수술대 위에서 수족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을 때에도 아프다는 소리 한번 안 지르고 기껏 한다는게 안면 근육을 찡그리는 정도라니 한국 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사이공에 와 있는 외국인들간에는 어떤 어린아이가 한국인인지, 미국인인지, 월남인인지를 식별하려면 병원에 데려가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는 「유머」까지 나돈다. 주사바늘을 발에 꽂아도 얼굴만 찡그리는 아이는 월남아이이며, 주사침을 갖다대면 우는 경우는 한국 아이이고, 주사침을 보기 만해도 우는 아이는 미국 어린이라는 얘기다.
월남인들은 비단 아픔 뿐 아니라 배고픔이나 기타 모든 불편에 대해서도 인내심이 강하다. 역사상 숱한 고난을 겪은 까닭에 이것이 응결되어 생리적으로 고통을 참는 특유한 비결이 생겨난 것 같다. 수십년씩 전쟁을 끌고 있는 것도, 그렇게 오랜 전시에도 「노이로제」 환자가 적은 이유의 일단도, 그런 인내심의 덕분인지 모른다.
서울의 종로통 같은 「사이공」의 「레·로이」 거리를 거닐어 보면 답답증이 절로 난다. 1백m를 걸어가는데 10분이나 걸리는 판이다. 이것저것 실컷 다보고 걸어가는 느린 인파 때문이다. 그러나 앞에 걸어가는 사람 보고 『여보시오, 좀 빨리 갑시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언제가도 목적지에 가지 않겠느냐는 인내심의 발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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