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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기 칼럼] 바야흐로 플랫폼 경제 시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53호 30면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유흥가 클럽에 가보면 재미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똑같은 손님인데도 여자들이 오면 입구에서부터 공짜인 데 반해 남자들은 입장료나 술값을 받는다. 사정인즉 매력적인 여성들이 북적대야 덩달아 ‘훈남’들까지 많이 찾아오게 마련이고, 그래야 ‘물이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손님이 더 몰리기 때문이란다.

‘신종’ 남녀차별 아니냐고 할 법하지만 이야말로 요즘 뜨고 있는 ‘양면 시장(two-sided market)’의 기본 원리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클럽이 제공하는 서비스나 분위기를 넘어서 이성 고객이 많이 찾을수록 또 다른 이성 고객이 많이 몰리는 시장. 수요자·공급자의 단일 차원을 넘어 이처럼 별개의 두 고객 그룹을 상대하며 상대방 그룹의 크기에 따라 서로의 수요에 영향을 주는 시장이 바로 ‘양면 시장’이다.

회원카드 고객이 많을수록 가맹점도 많아지는 신용카드 시장이나, 한 편엔 광고주 시장이 있지만 또 다른 한편에 인터넷 검색 수요자들로 이뤄진 인터넷 검색광고 시장이 바로 그런 시장이다.

양면 시장에선 상호 의존적인 고객들이 모이는 장(場)인 ‘플랫폼(platform)’이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원래 ‘승강장’이나 ‘연단’을 뜻하거나 컴퓨터·시스템의 기반 소프트웨어를 일컬었던 ‘플랫폼’이란 말은 이제 새로운 ‘비즈니스 생태계’를 지칭하는 용어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최근 빠르게 성장하는 정보기술(IT) 기업은 대부분 플랫폼 사업에 성공한 기업들이다. 애플은 앱스토어 플랫폼을 통해 콘텐트 제공자와 고객들을 연결했으며, 구글은 검색광고 플랫폼을 통해 콘텐트·광고주를 연결하며 나름의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2000년 세계 6위 기업으로 꼽혔던 일본 소니는 자체 플랫폼 사업에 실패해 단순 디바이스 제조사로 전락하면서 시장 주류에서 밀려났다.

국내에서도 이제 SK텔레콤이나 KT와 같은 이동통신사업자들은 다양한 복합 상품과 가입자를 바탕으로 고유한 생태계 구축에 성공하면서 IPTV, 인터넷 시장 등을 석권한 데 이어 금융업까지 넘보고 있다.

플랫폼을 통해 선순환 구조의 생태계가 조성되면 사용자가 많아질수록 효용이 커지는 ‘네트워크 효과’가 발생하면서 스스로 성장해 간다. 여기에 한번 종속되면 헤어나오기 어렵게 된다. ‘내 안에 가두는 장치’로 불리는 플랫폼이 무서운 이유다.

콘텐트, 플랫폼, 네트워크, 단말기(디바이스)로 이뤄진 이른바 ‘CPND 생태계’에서 플랫폼은 콘텐트부터 네트워크디바이스까지 흡수해 가며 왕좌를 굳혀가고 있다.

미국에선 최근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업체인 넷플릭스가 직접 제작한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를 지상파나 케이블 방송 없이 인터넷에만 시리즈 전편을 한꺼번에 공개해 충격을 줬다. 드라마 시청·배급 방식(플랫폼)을 혁명적으로 바꿔놓았다는 평가 속에 이를 보기 위한 유료 가입자는 3000만 명을 넘어섰다. 올해 에미상 3개 부문까지 휩쓸면서 기존 방송 드라마를 크게 위협했다.

이제 ‘콘텐트만 좋으면 시장이 저절로 따라온다’거나 ‘네크워크를 장악하면 성공한다’는 고정관념으론 새로운 비즈니스를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플랫폼의 시대』의 저자인 필 사이몬 역시 “비즈니스의 미래는 나만의 플랫폼을 개발해 확장하고, 역동적이고 강력한 생태계를 구축했는지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들은 ‘구글처럼 개방하고 페이스북처럼 공유하라’는 구호를 내걸고 관련 사업을 ‘장’, 즉 플랫폼에 모아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하는 전략을 찾아내야만 성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장’을 가진 자가 미래의 ‘부’를 지배한다. 고유의 기술과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스토리 텔링을 입힌 플랫폼을 만들어 내는 기업만이 최후의 승리자가 될 것이다.

1992년 미 대선 때 빌 클린턴 대통령의 구호였던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도 바뀌어야 한다. “바보야. 이제 문제는 플랫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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