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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난과 화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한꺼번에 60여명의 인명을 겨울바다에 잃은 진도 앞 바다의 해난사고는 그 경과를 들으면 들을수록 어처구니가 없다.
모든 잘못이 처음부터 너무도 뚜렷했었다.
당일, 사고지역에는 문제의「한성호」가 출발하던 상오 9시 현재 아직 태풍주의보가 해제되지 않고 있었다. 10시에 해제가 된다했지만 바다 위에는 초속 12m의 북서풍이 불고 있었고, 높이 4∼5m의 삼각파도가 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서는 안될 배가 떠났던 것이다.
68t짜리 목조선의 정원은 86명이었다. 그러나 배가 떠날 때 태운 승객은 1백36명 50명이나 정원을 초과하고 있었다. 그 나마 유영승객 명단을 제출하고 버젓이 출항허가를 얻었다.
애초에 출항해서는 안될 기상 속에서 실어서는 안될 정원초과 승객을 싣고 떠난「한성호」는 해운 국에 평수지역만 운항하겠다고 각서까지 써놓았으나 이것마저 어기고 계속 운항했다.
그뿐 아니라, 이같이 사고요인을 만 재하고 해양 속에 저돌한「한성호」의「키」는 조타경험이 없는 갑판원이 쥐고 있었다는 것이다.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정원초과 승객을 눈에 띄지 않게 하기 위해 선장은 출범당시 선실 문을 모두다 밖에서 잠그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럼으로써 배가 침몰했을 때 승객에게는 최후의 구조「찬스」조차 막아버렸던 것이다.
사고의 원인과 책임의 소재는 이처럼 너무나 명백하다. 귀중한 사람 목숨을 책임 맡고 상식 밖의 뱃길에 나서면서도「설마」에 모든 것을 걸고「키」마저 손에서 놓아버린 선장의 무모에는 그저 소름이 끼친다고 할 수밖에 없다.
어느 나라에서건, 선박·항공기의 선장과 기장은 승객과 적재한 화물의 보호에 관하여 누구보다도 깊은 책임을 느끼는 사람이며, 그러기에 그에게는 항해 중 거의 절대적인 권위가 인정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선주나 그 밖의 어떤 외부세력의 간섭에 대해서도 선장·기장은 단호히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야 하며, 그에 따른 책임의 가중에 대해서도 특별한 조치가 있어야할 것 같다.
그러나 이번 해난사고를 계기로 다시금 그릇된 출발은 반드시 그릇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되풀이 강조해야하겠다. 아마도 이 한가지 사실만이 이번 사고에 있어서의 유일한 순리요, 초 상식적인 사태를 수습할 수 있는 유일한 상식적인 결론이다.
같은 날 서울에서는 국립서울대학교 대학병원에 불이나 외래진료소가 전소된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났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외래진료소와 복도로 연결된 병동에서 이 불난리를 당한 중환자까지를 포함한 입원환자들은 심야에 대피소동을 벌여 대 혼잡을 이루었다고 한다. 성하지도 못한 몸으로 바로 이웃진료소가 타는 것을 뜬눈으로 보고 있어야만했던 그들의 심리적 충격이 오죽했을 것인가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아직 사고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전소된 외래진료소는 구한말에 지은 낡은 목조건물이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내화성이 없는 가연성의 이 목조건물은 그런 점에 있어서는 언제나 화재의 위험을 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위급시 병자를 대피시키기 위한 특별한 고려가 전혀 돼있지 않았다 한다. 생명을 다루는 병원당국자로서는 실로 한심한 실태였다고 아니할 수 없다.
병원 문이 닫혀 사람이 없을 때 불이 났으니 망정이지 만약에 외래환자가 밀린 대낮에 사고가 났었더라 면 어떠했을까.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서울대학병원의 화재는 하나의 경종으로서 감수해야될 것만 같다. 보도에 의하면 서울시내 27개 종합병원 가운데 그나마 내화·방화시설을 갖춘 병원은 넷뿐이라는 소식도 있다.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환자들을 다루고있는 각 병원은 이번 기회에 철저히 화기·화인의 점검을 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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