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기의 反 금병매] (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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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무대로서는 신부를 살 돈이 없어 다시 장가가는 일은 꿈도 꾸지 못하였는데, 장대호가 돈 한푼 받지 않고 금련을 무대에게 주었으니 그 일만 해도 감사하기 이를 데 없었다. 더군다나 얼굴과 몸매와 전족이 아름다운 여인을 얻게 되었으니 감지덕지할 일이었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무대가 호떡 재료 살 돈이 떨어져 장사를 할 수 없게 되었을 때는 장대호가 은 다섯 냥을 무대에게 주어 호떡을 계속 만들어 팔게 하였다. 무대는 장사 밑천까지 보태어주는 장대호가 고맙기 그지없었지만, 장대호로서는 무대가 호떡을 팔러 나가지 않으면 금련을 몰래 만나기가 힘들어지는 것이었다.

이제는 장대호가 왜 무대에게 금련을 주고 장사 밑천까지 대어주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지만, 무대로서는 그 일에 대해 항의를 할 수가 없었다. 항의를 했다가는 그날로 밥줄이 끊어질 판이었다.

무대에게는 무엇보다 딸 영아를 키우는 일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사안이었다. 장대호와 금련이 어떻게 놀아나든 자신과 영아가 따뜻한 집에서 밥을 먹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였다. 하지만 마누라를 팔아서 먹고 살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여겨져 무대는 주막으로 가 그날 호떡 팔아 번 돈을 다 털어 술을 사 마셨다.

무대가 술이 거나하게 취하여 늦은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자, 금련이 그래도 아내랍시고 예를 갖추어 무대를 맞아주었다.

"오늘따라 당신 얼굴이 더 아름답구려."

무대가 짐짓 금련을 치켜세워주었다. 아닌게 아니라 금련의 얼굴은 발그스름하게 상기되어 무르익은 복숭아 같았다.

"오늘 호떡은 잘 팔렸어요?"

"오랜만에 다 팔고 왔소. 그런데 그만 친구를 만나 술을 한잔 하느라고… 내 친구들이 말이야, 나한테 호떡 장사 잘 하는 비결을 가르쳐달라나. 내가 한 수 가르쳐 주고 왔지."

무대가 평소와는 달리 거드름까지 피우며 호떡판 끈을 어깨에서 풀어내렸다. 금련이 호떡판을 받아 마루에 놓아주며 한마디 하였다.

"노자 선생이 말씀하시기를, '양고심장(良賈深藏)'이라 했잖아요. 장사를 잘하는 상인은 깊게 숨겨두고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다고 말이에요."

"양고심장이라? 그건 매점 매석을 잘 한다는 뜻이 아니었나? 물건을 미리 사서 깊이 숨겨두는 것 말이야."

"장사 비결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 것도 양고심장이에요."

금련이 약간 토라진 표정을 지으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무대도 방으로 따라 들어가며 장대호의 흔적이 어디 남아 있나 슬쩍 둘러보았다. 하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방에서 장대호 흔적 같은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이거야말로 양고심장이군.'

무대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덥석 금련을 껴안았다. 그런데 금련의 반응이 보통 때와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에는 마지못해 안기는 듯했지만 지금은 무대의 품을 파고드는 듯이 안기는 것이 아닌가.

장대호와 놀아난 직후라 아직도 몸이 달아올라 있어 이러나 싶기도 했다. 그러자 슬그머니 부아가 일어남과 동시에 용기가 생기면서 무대의 몸에도 오랜만에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아무려면 내가 예순 넘은 노인보다 못 할까.

장대호에 대한 은근한 질투심이 무대의 기력을 잠시나마 회복시켜주었는지도 몰랐다.

"오늘 하루 종일 혼자 얼마나 심심했소?"

무대가 금련의 속을 떠보기 위해 제법 다정한 말투로 물어보았다. 금련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무대의 품을 파고들기만 하면서 이상하게도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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