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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준 "내부 표적 만들어 치자" 장성택 숙청 건의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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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조연준

장성택에 대한 전격적인 숙청 과정에 조연준(76)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김정은(29)의 핵심 책사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1일 정부 고위 당국자에 따르면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은 지난 9월 최측근 중 한 명인 조연준의 건의에 따라 고모부 장성택과 그 계파에 대한 힘빼기와 숙청에 착수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 정권 수립일 행사가 열린 지난 9월 9일 오후 고모 김경희(당 비서)와 남편 장성택을 뺀 채 가족회의가 열렸다”며 “김정은은 이 자리에 이례적으로 조연준을 불러 향후 권력 안정 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연준이 숙청 사태에 개입했다는 건 북·중 채널을 통해 북한 보위부 관계자로부터 확인한 내용”이라며 “회의에는 김정은의 형 정철과 여동생 여정도 참석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함북 고원군 출신으로 김일성종합대를 나온 조연준은 지도원·과장 등을 거친 정통 노동당 관료다. 김정은 체제가 출범한 지난해 1월 당 핵심인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을 맡았다. 석 달 후 당 정치국 후보위원에 올랐고, 김정은의 주요 일정에 수행하며 실세로 자리 잡았다. 통일부 당국자는 “실세이면서도 수행원 명단이나 행사 영상에는 잘 등장하지 않은 채 그림자 보좌 역할을 하는 인물”이라고 전했다.

 김정은은 9월 9일 가족회의 자리에서 “유일사상 10대 원칙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까지 빼버린 상황에서 이제 무슨 칼로 통치를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1974년 만든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을 위한 10대 원칙’은 김일성·김정일 부자 유일지배를 명문화해 철권통치의 근거가 됐다. 그러나 북한은 올해 이를 39년 만에 수정하면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가장 우월한 우리의 사회주의 제도’로 바꾸는 등 변화를 가했다.

 이에 조연준은 김정은에게 ‘이적이개(二敵二開·두 개의 적과 두 개의 개방)’ 개념을 제시했다고 정부 당국자는 설명했다. ‘미제와 남조선’이란 하나의 적 외에 내부에도 표적을 하나 더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이때 장성택의 반당행위와 부패 등에 대한 내사 파일이 제시됐고, 장성택에 대한 당 조직지도부와 국가안전보위부의 은밀한 작업이 시작됐다. 정부 당국자는 “가을 들어 장성택의 공개활동 횟수가 줄어들고 기세가 꺾인 분위기가 감지된 것은 이런 움직임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두 개의 개방’은 경제특구 등 외부에 대한 개방과 함께 주민들의 여행·통제 자유화 등을 의미한다. 숙청을 통한 공포정치에 이어 김정은이 주민들의 환심을 살 수 있는 통제 완화 조치를 취할 것이란 분석이 그래서 나오고 있다. 김정은은 숙청에 돌입하던 지난달 21일 각 도(道)의 외자 유치와 경제 개발을 추진하기 위한 13개 경제개발구 설치를 발표했었다.

 ◆“김정은, 군 강경파에 밀려 장성택 숙청”=토마스 셰퍼(61) 평양 주재 독일대사는 10일(현지시간) 베를린에서 열린 독일-한국협회 주최 행사에서 “김정은이 장성택에 대한 숙청을 전적으로 원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강경파의 압박에 밀렸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셰퍼 대사는 “김정은에 대한 군부 등의 충성이 강하지 않다”며 “장성택 숙청으로 김정은의 유일지배 체제가 강화됐다고 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셰퍼 대사는 2007년부터 3년간 북한 주재 대사를 지냈고, 지난 7월 다시 임명됐다.

 한편 민주당 홍익표 의원은 “김정은 위원장의 이복누이인 김설송과 그의 남편인 신봉남이 장성택 숙청을 주도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설송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 노동당 조직지도부에 있었을 정도로 북한에선 실세로 인정받았다”고 덧붙였다. 홍 의원은 또 “장성택의 측근인 장수길 부부장이 주도한 해외 식당 사업인 ‘해당화’ 에서 벌어들인 외화 중 일부가 싱가포르에서 비자금으로 발견됐다”며 비자금이 장성택 숙청의 명분이 됐다고 주장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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