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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원주 나전칠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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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두 평 짜리 온돌방3간에 크고 작은 함과 문갑들이 즐비하다. 엷고 짙은 색깔의 나무 그릇을 만지는 손놀림이 재빠르고 칠흑 위에 반짝이는 자개가 황홀하다. 강원도 원주시 태장동 765의 21 중요 무형문화재(인간문화재) 10호 김봉용옹(70)은 사라져 가는 나전칠기의 최후의 보루.
나전칠기는 목기에 아름다운 껍질무늬를 넣은 위에 옻(칠)칠을 입힌 것으로 목각공예를 대변해왔다.
옻칠에 자개가 아름다운 나전칠기는 만드는 과정이 복잡할 뿐만 아니라 섬세한 기술이 따르는 것.
잘 짜인 나무바탕에 노란 색깔의 끈끈한 생옻을 칠붓으로 칠하면 마른 뒤 검붉은 갈색을 띤다. 나무결의 틈은 생 옻으로 칠해 고르게 메우고 나무가 뒤틀리는 것을 막기 위해 옻에 찰풀을 개어 그릇을 모시로 싸 붙인다. 그 위에 숯가루와 옻을 섞어 한번 바른 뒤 숫돌로 면을 문지르고 황토와 옻을 섞어 두 번 바르고 또 고운 숫돌로 면을 문지른다. 표면을 고르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 다음은 아교로 나전을 붙이는 일. 조개껍질을 실톱으로 오려 만드는 나전도 꽃이나 새에는 야광패(소라), 풀·나뭇잎에는 청패(전복), 새의 꼬리·깃에「멕시코」패 (「멕시코」연안의 조개) 등을 골라 쓴다. 나전은 산수화·꽃·새·나뭇가지·당초무늬 등 가지각색.
나전을 붙인 위에 옻칠을 다시 하고 황토를 섞은 옻칠을 입힌 후 또 숫돌로 다듬고-그 다음엔 옻칠(초칠)하고 숯으로 고르고 또 한번 옻칠(중칠)하고 숯으로 다듬는 과정을 거쳐 마지막으로 광택을 입힌다(상칠). 초 칠을 할 때는 바탕의 전체색깔을 내기 위해 색깔이 있는 돌가루를 옻에 섞어 칠하는데 흔히 검은 색을 쓴다. 또 부분만 바탕과 다른 색깔을 넣을 때는 상 칠을 갉아내고 색 돌가루를 칠하는 것이다.
한번 칠하면 칠이 완전히 마른 뒤에 다음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한 과정이 3∼5일이 걸려 나전칠기 1개가 끝나는 기간은 3∼6개월. 칠하고 다듬는데는 이런 끈질긴 정성 뿐 아니라 기술이 더욱 요구된다. 옛 통영(응남 충무시)에는 12공방에서 나전칠기를 만들어 궁중에 진상했고 충무공도 임진왜란 때 참전한 명 제독에게 나전칠기를 선물했다고 전한다.
고향인 충무에서 17세기부터 기술을 익혀 6·25후에는 나전칠기양성소를 세워 후진을 기른 김옹이 원주에 자리 잡은 것은 4년 전. 치악산기슭에서 생산되는 옻나무 때문이었다.
중국·일본·월남 등에서 자라는 옻나무는 우리 나라의 경우간 배태천·황해 간산을 빼면 원주가 주산지. 원성군의 지 정면 판 부면·소 초면 등에는 수 십 만 그루의 옻나무가 있는데 나무에서 진을 받아낸 생 옻이 한해 3백관 가량 생산된다.
그러나 이제 원주의 생 옻나무도 점점 생산이 줄어드는 실정.
칠기를 만드는 사람도 사라져 가고있다. 「카슈」 등 날림 화공약품이 생겨 칠보다 더 편하게 칠 할 수 있기 때문.
『강원도의 피나무와 같은 좋은 목재, 원주의 옻나무에다 목공과 칠기기술자만 있다면 해외에도 수출할 수 있는 목칠공예 단지를 만들 수 있다.』-목칠공예단지를 만들겠다는 욕망이 없다면 원주에 더 머무를 이유가 없다는 김옹은 그 때문에 자신의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글 이기영 기자
사진 송승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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