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6) 한산 모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충남 서천군 한산면을 중심한 부근의 홍산·비인·임천·정산·서천·남포 등 7곳은 예부터 「저포 칠처」란 별명이 붙을 만큼 우리 나라의 모시 산지로 이름이 나 있다.
이중에서도 한산은 모시 중 최상품인 세모시의 본 고장.
한산 세모시는 습기를 흡수하고 발산함이 빠른데다가 천결이 곱고 윤택해 빳빳이 풀을 먹여 다림질하면 옷맵시도 그만이라 여름철 옷감으로 사랑을 독차지해 왔다.
한산면 지현리 모시 고장에서만 연세 70을 맞았다는 이갑선 노인은 『50여년 전만 해도 서천군 마산면 신장리 장에는 새벽장이 서면 멀리 서울과 평양에서 몰려든 장사꾼들이 소바리·노새바리로 실어냈으며, 판장마다 이불 채 만큼이나 쌓여 음력 8월 보름께는 하루 거래량이 5천 필을 넘었다』고 당시 한산 모시의 인기를 되살려준다.
모시의 원료인 모시풀 경작 면적을 보아도 충남 도내에서 69년까지만 해도 7백94정보이었던 것이 71년7월 현재 1백42정보에 모시 생산량은 7만 필에서 1만 필로 줄어들었다.
이러한 쇠퇴 현상은 고유의 직물 기법이나 직조 과정이 워낙 어려운 반면에 생산품에 대한 수익성은 낮아 『모시를 짜느니 새끼를 꼬는게 낫다』는게 현지 주민들의 말이다.
현재 무형문화재 14호로 지정된 문정옥씨 (44·여·한산면 지현리 86)를 비롯, 직물 기술자가 10여명에 불과, 자칫 한산 모시는 자취를 감출 처지에 놓여있다.
1년 전에 심은 모시풀이 2m 정도로 키가 크면 밑동을 쳐대 칼 (죽도)로 잎을 제거한다. 줄기를 다발로 묶어 5∼6시간 물에 담갔다가 줄기의 밑동 30cm 가량의 곳을 꺾어 1개의 줄기에서 2장의 껍질을 벗겨 1백개씩을 묶음으로 한 뒤 1개씩 빼내어 모시 벗기는 틀에 걸고 당기어 섬유만 벗긴다. 이와 같이하여 얻은 섬유를 맑은 물에 씻어 햇볕에 3∼4일 말리면 새파랗던 것이 하얗게 바랜 태모시가 된다.
이 태모시를 손톱과 이로 한올 한올을 일일이 째서 모시실을 만든다. 태모시 째기가 바로 모시질을 결정할 만큼 어려운 작업을 뽑고 나면 끝과 끝을 침을 발라 무릎에 비벼 잇는 「삼는 작업」을 한다. 『처음 배울 때는 모시 올에 입술이 찢기고 무릎이 까지는 아픔으로 그때처럼 여자로 태어난 걸 원망해 본 적은 없다』고 문씨는 옛 일을 회상한다.
삼은 올은 체바구니에 담아굿 (타래)을 만드는데 열굿이 돼야 한 필을 깔 수 있다. 열굿이 되면 한필 길이로 끊어 콩 풀을 먹이면서 등겻 불에 말려낸다. 날기가 끝나면 「바디」에 두올씩 끼어 두루마리에 감아 베틀에 올린다.
빠른 솜씨로 베틀을 눌려봐야 한 달에 40자 1필을 짠다. 한 필이면 남자 두루마기 1벌과 바지저고리 1벌 감이다.
시장에 내다 팔 때 잠자리 날개 같은 10새 세모시 (10새는 날실이 8백 올이 되는 것) 1필 값은 1만원.
『그처럼 어렵게 뽑은 모시 값이 겨우 그 정도니 누구에게 이 기술을 익히라고 권하겠읍니까.』 천년 전통의 한산 세모시 멋을 마지막으로 이어오는 문씨는 장녀 김정이 양 (15·한산 여중 1년)을 전승자로 지금부터 태모시 째기를 지도하고 있다.
글 고정웅 기자
사진 이창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