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볼 만한 공연] 권불십년? 명불허전! 조승우의 1인 4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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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오브 라만차’는 조승우에게 뮤지컬 배우의 꿈을 심어준 작품이다. 이 뮤지컬로 그는 2008년 더뮤지컬어워즈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사진 오디뮤지컬컴퍼니]

2004년 ‘지킬 앤 하이드’ 국내 초연 이후 조승우는 줄곧 대한민국 뮤지컬의 지존이었다. 실력과 인기를 동시에 겸비한 거의 유일한 배우로 10년째 왕좌를 지켜왔다.

 하지만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했던가. 최근 균열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강력한 추격자는 아이돌 출신 김준수다. ‘엘리자벳’ ‘모차르트!’ 등에서 열광적인 팬덤의 지지 속에 독특한 아우라를 뿜어냈다. 이미 티켓파워에선 조승우를 능가했다. 실력만 따져도 만만치 않은 내공의 소유자가 여럿 등장했다. 폭풍 가창력으로 무장한 정성화·홍광호 등이다. 그래서인지 “조승우의 아성이 흔들린다. 예전만 못하다”는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래도 조승우는 역시 조승우였다. 지난달 막을 올린 ‘맨 오브 라만차’는 왜 조승우가 최고의 뮤지컬 배우인가를 다시 입증하는 무대였다. 이 작품에서 조승우는 사실상 네 가지 배역을 소화한다. 현실 속 인물인 작가 세르반테스, 그리고 극 해설자로도 변신한다. 게다가 감옥 속 극중극 형태라 알론조 키하나도 연기해야 하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 인물인 돈키호테가 있다. 각 인물은 확연히 구분되는 듯하면서도 엇비슷한 면을 띠고 있어 그 간격을 끄집어내는 게 이 작품의 묘미다. 그걸 조승우는 섬세하고 절묘하게 포착해 냈다.

 뮤지컬도 역시 드라마다. 결국은 기본기였다. 어설픈 멋 부리기나 감정 과잉은 없었다. 조승우의 딕션(diction)은 또렷했고, 메시지는 간결했기에 관객은 몰입했고 흔들렸다. 그도 어느새 30대 중반, 표정에서 묘한 여운이 묻어 나왔다. 공연장을 나올 때면 조승우가 부른 ‘이룰 수 없는 꿈’(Impossible Dream)이 입에서 맴돌고 있음을 깨닫게 될 듯싶다. 연말까진 남은 자리가 거의 없다고 한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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