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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고국에 보내는 편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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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집에 편지를 써도 열흘이 넘어야 대답을 들을 수 있는 먼 곳에서 우리 취업자들은 고국에 대해 수많은 할말들을 가지고 있다.
다음은 「베를린」에서 일하는 취업자들로부터 「고국에 보내는 편지」들을 모아 본 것이다. 이 여론조사는 한국인성당「비둘기 집」의 도움으로 설문지 3백장을 배부, 그중 회수된 1백3장(간호원42장·「카베우」기술자 61장)을 정리했다.
이들의 부탁은 출국 전 교육의 강화, 송금의 빠른 처리, 배우자의 출국허가, 상담기관 설치, 그리고 신문·잡지·「라면」을 보내달라는 요구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하다.

<출국 전 교육의 보충을>
전체응답자의 96%(97명)가 계속 외국으로 나갈 앞으로의 취업자들을 위해 사전교육이 강화되기를 당부하고 있다.
보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용은 『독일 사람들의 사고방식, 생활방식, 애정관, 도덕관 등에 대한 강의』(57%), 『노동계약, 보험규정, 이민법, 체재연장 등에 대한 해설』(25%), 『독일에서 일을 마치고 온 사람들의 경험담』(17%) 등이다.
『독일사람들의 생활방식, 애정관 등에 대한 강의』는 남녀취업자 모두가 1위로 꼽고 있는데 특히 남자쪽 반응이 강하다.
『여자들이 함부로 독일남자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이곳 사람들의 개방적인 풍조를 알려줘야 한다』고 쓴 사람도 있고 『외국남자와 같이 다니는 우리아가씨들을 보면 괴롭다』고 쓴 사람도 있다.
『일요일에는 모든 가게가 문을 닫는다는 것을 몰라 빵 한 조각 못사고 혼이 났었다』면서 『경험자들의 얘기를 꼭 들려줘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현행 교육시간은 8시간인데 이들은 가장 적당한 교육기간이 『하루 2시간씩 1주일』 (61%)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방사람들의 경우에는 1주일씩 와서 교육받기 힘들고 또 출국 전에는 마음이 바빠 교육받은 것을 기억할 수가 없으므로 모든 강의내용을 책으로 만들어 나눠준다면 두고두고 도움이 될 것이다』
『말은 도착하는 날부터 필요하지만 단시간에 배우기 힘들므로 회화책을 한 권씩 주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다.

<송금처리를 신속하게>
집에 송금을 한다고 대답한 87명 중 79명이 『좀더 빨리 가족들이 돈을 찾을 수 있게 해달라』고 외환은행에 부탁하고 있다.
보통 송금한지 20일 한 달이 넘어야 돈을 찾을 수 있다는데 모두가 빚 갚기 등으로 하루가 급한 돈이며 또 은행적금이나 곗날을 지킬 수 없어 곤란하다고 이들은 말한다.
우편송금은 1주일이면 되지만 간혹 분실되는 일이 있어 은행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의 봉급은 8백∼1천「마르크」사이가 가장 많아 83%나 되고 나머지는 1천∼1천7백「마르크」 사이이다. 송금액수는 2백∼4백「마르크」46%, 5백∼7백「마르크」27%, 8백∼1천「마르크」12%, 그리고 1천∼1천5백「마르크」를 송금하는 사람도 5명이 있다.
그러나 『저축이 있다』는 사람은 18%밖에 없으며 액수도 1만「마르크」(1백30만원)를 2년 반 동안에 모은 사람이 최고이다. 남자들은 3명밖에 저축이 없고 나머지는 빚 갚기, 가족생계비로 송금이 모두 쓰여진다고 밝히고 있다.
지금 가장 고민되는 것도 『돈 문제』(39%)가 최고로, 『장래문제』(21%), 『이성 결혼문제』(13%), 『일에 대한 적응』(9%) 등에 따른 고민을 능가하고 있다.
집에 송금하는 사람의 약40%는 독일 안에서의 저축을 병행하고 있는데 액수는 1백∼5백「마르크」정도이다. 이유는 『비상금으로 쓰기 위해』『귀국할 때 「쇼핑」비용으로』『독일에서 저축하는 게 안전할 듯해서』 등이다.

<「라면」·고춧가루를>
『애써 번 돈으로 일본「라면」을 사먹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서 이들은 우리 나라에서 대량으로 「라면」·간장·고추장·고춧가루·「인스턴트」냉면 등을 보내준다면 외화획득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간혹 제3국을 통해온 한국「라면」을 살 수 있는 때도 있지만 수출용 85g짜리라 양이 적고 값도 70「페니히」(90원)나 한다는 것이다. 일본·중국의 식료품가게나 음식점은 이곳에서 없는 도시가 없지만 한국음식점은 전체 독일 안에 한두 개 정도라 『냉면을 먹고 싶어도 어쩔 수가 없다』고 이들은 「인스턴트」냉면이라도 쉽게 살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책과 신문을 원가로>
『휴일이나 일이 없는 날은 갈 곳이 없어 숙소에서 지낸다』는 사람이 74%나 되는데 이들은 한결같이 소설, 잡지, 신문을 한두 달 늦게라도 좋으니 싼 값으로 구독할 수 없겠느냐고 부탁하고 있다.
『서울 떠난 지 8개월 동안 신문 한장 본 적이 없다』고 쓴 사람도 있고 『가족들이 편지 속에 오려 넣어 보내주는 신문기사를 읽으려니 감질이 난다』는 사람도 있다.
『일선에 위문품 보내듯이 우리에게도 묵은 신문이나마 배로 한 뭉치씩 부쳐주면 자치회에서 송료를 모아 보내겠다』고 이들은 고국의 소식에 목말라한다.

<배우자의 출국허가>
현재 「본」대사관은 독일 온지 2년이 넘는 취업자에게는 일시 귀국을 허가하고 있는데『같은 비용으로 아내가 독일에 왔다 갈 수는 없겠느냐』고 쓴 기술자가 9명이나 된다. 이것은 가족합류를 허가하기에 앞서 시도해 볼만한 일로 생각한다. 『일시 귀국하게 되면 가족 친지의 선물 값 등으로 돈이 더 든다. 아내가 오면 독일구경이라도 시켜 줄 수 있다』고 쓴 사람도 있다.

<응답자 분석>
간호원의 경우 42명 중에서 20대가 31명, 30대가 11명이고 기혼여성이 10명이다.
기혼자 중 2명만이 남편의 직업이 「상업」이라고 밝혔고 나머지는 직업과 생존여부를 밝히지 않고 있다. 부양가족은 5, 6명(18명)이 가장 많고, 학력은 대졸이 2명, 나머지는 간호학교나 고등학교 졸업이다.
기술자의 경우 61명 중 47명만이 나이를 밝히고 있는데 이중 7명이 20대, 34명이 30대, 6명이 40대이다. 전원이 기혼자이며 부양가족은 5, 6명(78%)이 가장 많다. 학력은 대졸 4명, 고졸 23명 ,중졸 15명이다.
이들의 출신도는서울 23명, 전남북 17명, 경남북 13명, 강원 9명, 경기 9명, 충남북 8명의 순서이다. 나머지는 고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들 중 19%가 직장을 한번 이상 옮겼으며 독일에 있는 동안 『슬픈 일이 더 많았다』 는 사람이 61%이다. 『가장 기뻤던 일』은 간호원들의 경우 5명이 『환자들의 회복』을 들고 있을 뿐 나머지는 빈간으로 내버려두고 있다. 『가장 슬펐던 일』로는 『가족과 이별할 때』『부모별세의 소식이 왔을 때』『독일인 동료들과 다투다가 책임자가 독일사람 편을 들 때』 등이다.
국제결혼에 대해서는 남자들이 전원 반대하고 있으나 여자의 경우에는 61%가 반대, 8%가 찬성이고 나머지는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다. 『독일인과 결혼하겠다』는 사람도 3명 있다. 찬성과 반대의 이유는 『사랑한다면 구태여 안 할 필요가 없다』『습관과 문화가 달라 오래 같이 살기 힘들다』 등이다.
계약기간이 끝난 후 『귀국하겠다』는 사람은 14%뿐이고 『제3국으로 가겠다』19%, 『독일에서 더 일하겠다』 11%, 『독일에서 공부를 하겠다』 7%, 나머지는 『그때 가봐야 알겠다』는 대답이다. <끝>
차례
①계약전후
②아내와 나날을
③송금날
④고독한 천사
⑤고국에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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