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유배 중의 김옥균 친필서한 발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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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동경=박동순특파원】일본 북해도에 유배 중이던 한말개학의 선구자 고균 김옥균이 당시의 일본총리대신 「구로따」와 외무대신 「오오꾸마」에게 보낸 친필서한 2통과 그 초고가 발견돼 일본 망명 중 그에 대한 일본정부의 냉대를 입증하는 귀중자료로서 평가되고 있다.
이들 장문의 친필서한과 함께 당시 내무대신 「야마까다」가 고균을 해외에 추방하라고 「가나까와」현령에 위임하는 공문도 아울러 발견되었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일본정부의 김옥균 두둔설을 부정하는 사료가 되는 것이다. 이들 사료는 지난 6월 서울에 왔던 교포작가 이회성씨에 의해 발견돼 6일 밝혀졌다.
1884년12월 갑신정변이 실패로 돌아가자 일본에 망명한 김옥균은 일본 관변의 냉대와 경원을 받으면서 살다가 1886년6월12일 공식적인 추방령을 받았다. 이번 발견된 「야마까다」내무대신의 추방령은 『조선국 사람 김옥균이란자 국사범으로서 본국을 탈출, 목하 일본에 체류 중인데 일본정부와 두터운 우의관계에 있는 현 조선정부에 불쾌한 감각을 일으킨다』 고 지적, 명령서가 하달된 다음날부터 15일 이내에 일본영토 밖으로 추방하라고 「가나까와」현령에게 위임하고 있다.
이 추방령은 조선의 사대당이 김옥균을 암살하려고 보낸 자객 지운영을 일본에서 추방시키는 것과 동시에 취해졌다.
이 추방령에 따라 김옥균은 일본 남쪽에 있는 낙도 임염남도에 유배, 3년간 억류됐다가 개척지인 북해도의 「삽보로」에 옮겨졌었다.
새로 발견된 친필서한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삽보로」에서의 쓰라린 생활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관리로부터의 모독과 냉대, 『구미 각국 문명세계의 풍화를 보고 그 학문과 어학을 배우고자 함이 골수의 소원』이므로 미국에 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애원, 그것이 여의치 못하더라도 일체의 관의 간섭을 배제해 줄 것, 북해도에 그냥 두어두려면 개간·농목사업을 할 수 있도록 자금을 대주어 자리잡고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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