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어당의 사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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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77세의 임어당이 한영사전을 냈다. 한 외지에서는 『필생의 역저』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사전을 엮어 낸다는 것처럼 어려운 일도 없다. 세계적으로 정평이 있는 대영사전의 3권 짜리 초판은 1768년에 시작되어 3년 후에 완성되었다. 그렇지만 그 후 꾸준한 수정과 증보를 거듭하여 가령 18권 짜리 제3판만 해도 1787년부터 꼬박 10년이 걸려서 완성됐다. 그러고도 오늘날에 이르도록 해마다 증보를 거듭하고 있다.
「아카데미·프랑세즈」에서 엮은 사전은 1639년에 시작되어 94년에야 겨우 완성을 보았다. 또한 「디드로」가 중심이 된 이른바 백과전서파에 의한 사전은 1743년에 시작되어 14년 후에야 겨우 제7권을 냈을 뿐이다.
백과사전은 여러 사람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대영사전만 해도 편집자가 2백명이 넘는다. 그러나 일반 어학관계 사전은 한 사람이 만들어 내는게 보통이다. 따라서 대개의 경우 필생의 작업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가령 「새뮤얼·존슨」은 8년이 걸려서 영어사전을 낸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반생에 걸쳐서 만들어 낸 것이다.
미국대학생들 사이에 필수의 사전으로 되어있는 「웹스터」사전은 「웹스터」가 28년이나 걸려서 만들어낸 것이다.
한편 「프랑스」어에 있어 가장 권위 있다는 「라루스」의 사전은 그가 1876년에 죽기 직전에야 완성시킬 수 있었다. 이를테면 일생을 여기 바친 것이다.
사전은 이처럼 오래 걸린다. 또 아무리 오래 걸려서 만들어도 완벽해질 수도 없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살아 있는 언어에 관한 어떠한 사전도 완벽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출판될 무렵에는 이미 새 말들이 나오고, 또 어느 말들은 사멸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존슨」은 자기 사전의 서문에 적어 놓고 있는 것이다.
임어당이 사전편찬에 착수한 것도 l927년부터였다. 그게 이제야 햇빛을 본 것이다. 약 반세기가 걸린 셈이다.
물론 2차 대전에 의한 공백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해도 10년 이상이 걸린 것이다. 그것도 18명의 조수들 도움을 받아서였다.
우리 나라에서의 사전이나 「엔사이클로피디어」편찬을 살펴 볼 때, 10년씩이나 걸려서 만들어진 것이 얼마나 될는지 의심스럽다.
그만큼 끈질긴 데가 없어서 만도 아닐 것이다. 사전처럼 화려하지 않은 일에 심혈을 기울이지 못하게 만드는 무엇인지가 우리네 정신풍토에 혹은 없는 게 아닌가하는 의문도 품게 된다. 또는 학자적인 양심이랄까 성실성이 문제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비록 외국인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임어당에게서 배울 것은 여러 가지로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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