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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의 한국인력(4)-고독한 천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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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72년7월 현재 서독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 간호요원의 수는 5천7백명이나 된다. 이 숫자는 서독에 와있는 광부 2천5백명과 기타 기능공 6백명을 합친 숫자의 거의 2배나 된다.
만리이역에 가서 일하는 이처럼 많은 여성들을 위해 어떤 배려를 했던가 하는 반성을 우리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본」대사관에는 현재 4명의 노무관이 파견되어 있다. 한 명쯤은 여성 노무관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논의조차 우리는 해 본 일이 없었다.
집 떠난 사람이면 누구나 외로움을 느낀다. 그러나 대부분 결혼적령기에 있는 이들 여성의 외로움은 더욱 중시할 필요가 있다. 외로움으로 인한 많은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으며, 우리사회의 전통적인 관념은 끝내 그 부작용들을 용납하지 않으리라는 점에 더 큰 문제가 있다.
66년 간호요원이 서독에 첫 진출한 이래 정신이상을 일으켰거나, 자살한 사람의 수가 다수에 달하고 있다. 정신이상을 일으킨 사람 중에는 재발한 「케이스」들이 섞여있어 출국당시의 신체검사 불비가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소외감·이성문제·진로문제·그리고 적응해 가는 과정의 고민 등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1천3백명의 우리 간호원이 일하고 있는 「베를린」에서만 금년 들어 3명이 자살했다. 그중 둘은 독일청년과의 사랑이 실패로 돌아간 것을 비관한 「케이스」였다. 한 사람은 연초의 휴가가 끝나고도 일하러 나오지 않자 방으로 찾아간 병원직원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이미 숨진지 1주일이 넘는 시체로 변해있었다.
「함부르크」에서 지난봄 자살한 한 간호원은 독일에서의 3년 계약기간이 끝나자 미국에 가서 다시 일하기 위해 영사관에 들러 여권변경까지 해놓고 있었다. 미국으로 떠나기 며칠 전 그는 꽤 많이 모인 예금을 고향으로 보내달라는 유서를 써놓고 자살했다. 아무런 자살의 이유를 발견할 수 없었고 다만 그가 몹시 지쳐있었다는 것을 알아내었을 뿐이었다.
이렇게 극심한 마음의 고통을 겪을 때 이들은 어디로 가는가. 『갈곳도 의논할 사람도 없다』는 것이 이들 대부분의 대답이다. 「베를린」은 비교적 다행한 곳으로 정하은 목사가 원장으로 있는 한국문화원과 김차규 신부, 「박 아그네스」수녀가 있는 「비둘기 집」이 있다.
서독의 천주교와 기독교본부로부터 예산을 받아 한국인 취업자를 위해 운영되고 있는 이 두 단체는 신자를 상대로 한 「카운셀링」에서부터 도서실운영, 친목야유회, 각종 강습을 주관하고있다.
서독 안의 모든 취업자들은 교회세라는 것을 매달 납부하기 때문에 우리취업자들이 이런 혜택을 받는 것은 당연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은 종교적인 문제로 어떤 한계를 지니게된다. 그리고 우리 취업자들의 문제를 서독의 종교재단에만 의존한다는 것도 생각할 문제이다. 이들이 벌어들이는 외화의 일부만 사용한다면 서독의 큰 도시 몇 개에는 취업자들의 각종 상담에 응할 수 있는「카운슬러」를 파견할 수 있을 것이다.
결혼적령기의 아가씨들이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국남자를 만나기 힘든 곳에서 독일남자들이 그 상대가 된다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많은 우리 간호원들이 독일남자와 사랑을 하고 가정을 이루어 낯선 이국에서 남편들로부터 큰 도움을 받고있다.
그러나 만나서 사랑하고 또 헤어지는 기준이 우리나라와는 다른 이곳에서 우리 간호원들은 때때로 심한 「쇼크」를 받는 일이 많다. 사랑하면 결혼하리라는 생각이 산산조각이 났을 때 대부분의 아가씨들은 「외국인과의 사랑」을 보는 우리 전통사회의 눈을 의식하고 절망감을 맛보게된다. 이 사랑의 문제는 극히 일부 간호원들의 문제이지만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될 심각한 문제이기도 하다.
전체 간호원 중 20%정도를 차지하는 기혼여성의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남편과 아이들을 두고 온 이들 엄마들은 남자와 비교가 안 될 만큼 심한 집 생각에 빠지게된다.
『우리병원에 있는 30명의 한국간호원 중 5명이 기혼여성이다. 이들은 거의 매일 눈물로 지새우고 그 중 한 명은 중간에 돌아가 버렸다. 대부분의 병원은 식사 나를 때의 보조원 등으로 남자일손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들이 남편을 데리고 오면 쉽게 같은 병원에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베를린」시 노인병원의 수간호원 「플린트」여사는 심한 고독은 업무수행에 지장이 있을 뿐 아니라 독일까지 일하러 오는 의의를 상실하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장명수기자 현지답사기】

<차례>
①계약전후
②나날을 아내와
③송금날
④고독한 천사
⑤고국에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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