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뭉칫돈, 한국서 대만 증시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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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대만 증시가 지난 2주간 강하게 반등했다. 외국인이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6일 사이 9억3160만 달러어치의 주식을 사들이면서다. 같은 기간 한국에서의 외국인 자금 흐름은 이와는 반대였다. 외국인은 이 기간 코스피와 코스닥에서 3억2620억원어치의 주식을 팔았다. 한국으로 몰려오던 외국인 자금이 대만으로 이동한 셈이다.

 신흥국 내에서의 이 같은 자금 흐름을 놓고 시장에선 “신흥국 간 차별화 흐름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올 6월 미국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 우려가 불거지면서 외국인들은 신흥국 시장에 투자했던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달여 만인 8월부터 외국인들은 한국 주식만큼은 무섭게 사들였다. 8~10월 사이 외국인들은 39거래일간 사상 최장 규모의 바이코리아 행진을 펼치며 141억 달러어치의 주식을 쓸어 담았다. 신흥국 시장에 속해 있지만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 수출 비중이 높아 선진국 경기 회복의 수혜를 볼 수 있는 데다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견고하다는 점이 매력으로 작용했다. 연초 시작된 뱅가드 펀드의 한국물 매도로 주가가 오르지 않은 점도 작용했다. 그러나 최근 일본의 엔화 가치가 지속적인 약세를 띠면서 외국인은 한국에서 등을 돌리는 양상이다. 엔저로 한국 수출기업의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한국에 대한 투자 대안으로 떠오른 나라가 바로 대만이다. 대만 역시 경상수지 흑자국으로, 정보기술(IT) 제조업 기반의 산업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대상 대신증권 연구원은 “상대적으로 일본에 대한 산업 경합도가 한국에 비해 약해 반사 이익을 누렸다”며 “대만 역시 한국과 비슷하게, 신흥국 내에서는 선진국 대접을 받는 나라”라고 설명했다. 외국인이 좋아하는 신흥국이 따로 있다는 얘기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9일 현재 국내 대만 주식형 펀드의 올 평균 수익률은 13%를 기록, 외국인의 대만 사랑이 괜한 것이 아님을 증명했다. 규모가 가장 큰 ING타이완증권 펀드는 올 들어 27.61%의 수익을 냈다.

 대만 외에도 올 들어 20% 이상 성장한 베트남 주식 시장의 성과도 눈에 띈다. 국영 항공사인 베트남항공의 기업공개(IPO) 등 정부의 과감한 민영화 정책이 시장을 끌어올린 동력으로 꼽힌다. 베트남 시장에도 올 들어 외국인 자금이 유입됐다. 반면 반정부 시위가 고조되고 있는 태국은 올 들어 54억 달러 이상의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갔다.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 때문에 지난여름 위기설이 돌았던 인도네시아에선 외국인이 올해 12억 달러를 팔았다.

 글로벌 펀드 동향을 봐도 이런 신흥국 내 차별화 현상은 뚜렷이 보인다. 글로벌 이머징 펀드의 경우 최근 6주간 자금 유출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과 대만, 중국이 포함된 아시아 신흥국 펀드로는 최근 3주간 자금이 들어오고 있다. 이영준 현대증권 연구원은 “같은 유로화를 쓴다고 유로존이 단일 투자 대상이 아니라고들 하는데 하물며 통화마저 다른 신흥국 시장을 단일하게 볼 수 있겠느냐”며 “내년 테이퍼링 이후에도 신흥국 주가는 양극화의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대만·베트남 증시가 좋아지고 있긴 하지만 선진국 위주의 강세장을 예상하는 전문가들이 더 많다. 김후정 동양증권 연구원은 “올해 미국과 유럽 펀드는 30%, 일본 펀드는 40% 가까이 성장한 반면 신흥국 펀드는 한 자릿수대 수익률을 보였다”며 “내년에도 올해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해외 펀드에 가입할 경우 선진국 중심으로 투자 바구니를 짜야 한다는 얘기다.

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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