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헌법안의 핵심적 개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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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불과 3일 앞으로 다가온 국민투표를 눈앞에 두고, 그 동안 전국적으로 진행된 계몽·해설·강연 등은 대체로 순조로이 진척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유신헌법안이 가지고 있는 여러 특색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지위에 관한 새로운 개념이다. 즉 『권력의 인격화』라는 개념의 도인이 바로 그것이다.
헌법학자들은 『권력의 인격화』를 『제도에 앞선 구체적 「리더쉽」에의 착안』이며 다른 말로 바꾸어 『자연인을 전제로 한 권력의 통합』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10월 유신은 복합적인 대개혁운동이지만 정치적 측면에서는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를 그 과제로 삼고 있다. 이 한국적 민주주의의 시간성, 공간성을 규정짓기 위한 유신헌법안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인 『권력의 인격화』를 음미해볼 만 하다.
법은 사회적으로 기능하는 것이며 실천적 규범으로서 국가질서를 유지, 형성하는 규범적 의미를 갖고, 시대에 따라 의미내용에 변용을 불가피하게 할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특히 헌법은 국가의 기본법으로서 권력관계의 기본을 다루고 있어 헌법의 장치화·형해화가 있을 때마다 정치적인 불안정이 이루어지는 것이 상례이다.
유신헌법안을 종합적으로 평가해보는 헌법학자의 대담(작일자 본지3면)에 의하면 『권력을 추상적인 제도로 파악할 것이 아니라 권력의 주체화·기능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 『권력의 인격화』는 국내외의 난국을 주체적으로 타개해 나가야 할 오늘의 여건에서 필요한 것이라고 하였다.
권력의 인격화는 1960년대 이래의 세계적 추세라는 것이 또한 이 학자들의 견해인 듯 하다. 이는 근대의 민족국가이론에서는 견제와 균형을 원리로 하여 『평균인』적인 지도자를 요망했으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평균인이상의 「리더쉽」을 요망하고 있다는 설명이기도 하다.
사법상으로는 권리능력은 고대법으로부터 자연인에게 당연히 내재하는 것이 아니고 법에 의해서만 부여된다. 그렇다면 공권력의 인격화는 공권력을 문언적 제도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기능 할 수 있는 주체적 권리능력의 부여라고 파악할 수 있다.
이 같은 법의 내실화는 유신헌법이 이룩하려는 법 기본질서와 정치체제의 기준이며 지도원리가 되어있다. 앞서 인용한 헌법학자의 대담에서도 권력의 통합은 「리더쉽」의 기능화를 가져오니까 「리더」에 대한 착안출발과 그로써 결과되는 과정은 상관작용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권력의 인격화문제에서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할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즉 그것은 권리와 의무의 양면성의 문제인 것이다.
현대의 법제에 있어 권리의 부여는 동시에 의무를 수반한다. 노예와 같이 권리 없는 의무만의 부담이 용인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방적인 권리만의 부여도 용인되지 않는다. 유신헌법도 대통령에게 지운 직접·간접의 책무로서 권력의 절대성을 배제했음을 볼 수 있다.
국가기본체제의 질서는 나라마다 특수성을 띤다. 또 그것은 인간집단의 질서로서 당연히 무엇인가의 중심이 없어서는 안 된다. 집단내 각인의 관념가운데 공통적으로 응집되는 중심이 있어 비로소 집단이 존립한다.
그것은 자각적인 것일 수도 있고 무의식적인 것 일수도 있으며 혹은 특정한 사람이거나 구상화되지 않은 어떤 관념일 경우도 있을 것이다. 또 합리적인 논리로 설명이 가능한 경우와 비합리, 신비적인 것일 수도 있다.
10월 유신은 『능률 있는 국민의 총화』를 새로운 질서로 제시했고 유신헌법은 권력의 인격화로써 중심적 응집을 지향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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