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창적인 성리학 이론가 고봉 기대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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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성균관이 주최한 고봉 기대승 선생 4백주기 기념강연회가 14일 하오 2시 신문회관 강당에서 열렸다.
「조선왕조성리학과 고봉선생의 사상」을 주제로 한 이날 강연에서 이을호 박사(전남대) 는 「고봉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유승국 교수(성균관대 유학대학장)는 「고봉 선생의 철학사상」을, 또 윤사순 교수(고려대)가 「고봉사상의 현대적 의의」를 설명했다.
고봉 기대승(1527∼1572년)은 조선 성리학의 대표적 거봉의 하나로 퇴계와 8년간에 걸친 사칠논변의 끈질긴 학문적 토론을 벌인 인물이다.
측은·수악·사양·시비의 마음인 사단과 희노애구애악욕의 칠정이 어떻게 해서 일어나는가? 이가 발한 것인가, 기가 발한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당대의 대학자인 퇴계와 고봉이 8년간 끌어간 논쟁은 한국학계에서 길이 기억될 순수한 학문적 논쟁의 귀범이었다.
이을호 교수는 『이 사칠논변이 조선 성리학의 결정이고 퇴계와 고봉이 그 주인공이라면 고봉을 흔히 도외시하는 종래의 유학사적 평가들은 재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남·기호 두 학파의 영수로서 퇴계·율곡이 부각되는 것이 통례지만 고봉의 중요성이 무시될 수 없다는 것.
이 교수는 두 가지 면에서 특히 고봉은 기억되어야겠다고 했다. 첫째는 사칠논변의 마지막에 고봉이 퇴계의 수정설을 시인한 것으로 돼 있지만 고봉의 주기설적인 이약기강설이나 이기불가분리설은 그것대로 학문적 가치를 가진 것이며, 둘째 그의 학설은 논변에서 끝나지 앉고 후대에 계승됐다는 점이다.
퇴계와 고봉의 논쟁은 뒤에 성우계와 율곡의 논쟁으로 발전됐으며 율곡이 고봉의 주기론음 계승한 양장을 보였다.
유승국 교수는 퇴계와 고봉이 26년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예절을 잃지 않고 학문적 토론을 전개했던 점을 높이 평가하고 뒤에 고봉이 퇴계의 입장을 이해하고, 퇴계도 이도설에서 고봉으로부터 많은 깨우침을 받았음을 술회한 점을 들었다.
호학군주인 정조가 고봉의 『논사록』을 읽으면서 『시비의 근원을 따지는데 가장 좋은 책이며 학문이론 뿐 아니라 통치의 지침이 된다』고 하면서 고봉의 치제를 명한 것이나 고봉과 사상적으로 가까왔던 김하서를 문묘에 배향한 것은 모두 고봉의 학문을 높이 산 때문이다.
퇴계와의 논변도 하서와의 의견교환을 통해 이뤄졌다는 얘기가 있으나 논변 첫해에 하서가 별세한 것으로 봐서 고봉의 독창적 이론임이 입증된다고 유 교수는 설명했다.
퇴계가 인륜도덕적 입장에서 천리와 선행을 높이면서 이론을 전개한데 비해 고봉은 진리와 허위를 밝히는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입장을 강조한 점에서 각기 특징이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진리에 대한 굽힘 없는 수호정신이 고봉의 입장에 나타나 있다. 그 점은 그가 경연에서 『천하의 일이 옳고 그름이 없을 수 없다. 옳고 그름이 분명한 연후에 인심이 복종하고 정사가 순조로운 것』이라고 말한데서도 나타난다.
그는 성리학의 창시자라 할 주자이론마저도 그 근원에 좇아 맹자의 본뜻에서 벗어나지 않았는가를 따져야 한다고 했다.
유 교수는 특히 이러한 고봉의 정리에 대한 정신이 한국유학에 계승되어 온 의리정신의 표현이기 때문에 율곡에 앞서 이미 『언로가 열리면 나라가 편안하고, 언로가 막히면 나라가 위태하다』고 경연에서 주장케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와 덕에 의한 정치이념이 유가의 목표이며 국민의 도덕적 자각에 의해 참다운 선공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유학의 정신이었다. 때문에 고봉은 심성설을 탐구하면서 그 도덕적 자각문제를 궁리했다. 또 그는 이를 중시, 합리적인 정신을 크게 강조했던 것은 현대에도 살려야 할 정신인 것이라고 윤사순 교수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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