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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락 조절위장 만찬회 연설 전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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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남-북 조절위원회 서울 측 공동위원장인 나와 나의 일행은 7·4 남-북 공동성명정신에 입각하여. 조국의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을 실현하는 방안을 다시 논의하기 위해 이곳 평양을 찾아왔습니다.
이미 여러분들께서도 아시다시피 나 개인으로서는 이번의 평양 방문이 초행길은 아닙니다. 지금으로부터 꼭 6개월 전 나는 이미 평양을 한차례 다녀간바 있습니다.
지난 5월2일 이곳을 방문하여 김일성 수상 및 김영주 조직지도부장과 일련의 회담을 갖고 조국의 장내에 관하여 흉금을 터놓고 허심탄회한 의견교환을 가진바 있는 것입니다.
반년 전의 나의 평양방문은 문자그대로 비밀의 행차였습니다. 나는 오로지 단절된 민족의 비극을 뼈에 사무치게 느낀 나머지 민족을 위해 필요하다면 나 스스로를 바치겠다는 비장한 각오만으로 그때 휴전선을 넘어 평양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반년이 지난 오늘, 오늘의 이 장면은 실로 감격적인 장면, 바로 그것입니다. 이번 평양방문은 온 겨레와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루어졌으며 남의 3천5백만 겨레들은 나와 나의 일행이 평양방문을 통해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하루라도 앞당기기 위해 어떠한 성과를 가지고 돌아올 것인가를 큰 기대 속에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괄목할만한 남-북 관계의 전진이며 발전입니까.
우리의 새로운 남북관계는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과 같이 이미 수많은 진전을 이룩하였습니다. 우리의 남-북 관계는 우리 사이에 개척된 대화를 보다 폭넓게 그리고 진지하게 추진하여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최종 목표인 조국의 자주적·평화적 통일은 한 걸음 한 걸음 우리 앞에 다가오게 될 것임을 우리는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날의 남-북 관계는 남의 자유민주주의와 북의 공산주의라는 서로 극단적으로 이질적인 체제간의 차이로 말미암아 날이 갈수록 심화되는 상호불신과 증오로 특징지어졌습니다. 특히 50년대 초의 동족상잔의 참혹했던 전쟁으로 말미암아 그 오해와 불신과 증오는 더욱 짙어져 적대 의식으로 번져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나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김일성 수상을 비롯, 김영주 조직지도부장, 박성철 제2부수상과 오로지 민족의 장래를 염려하는 마음으로 격의 없는 의견교환을 가진바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의견교환과정에서 우리는 남-북이 비록 체제와 이념은 달리하고 있지만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더 이상 과거사에만 집착하는 나머지 미래를 저버릴 수 없다는 서로의 견해에 일치를 보았던 것입니다.
정녕 우리는 남과 북 사이에 오랜 단절로 말미암아 수많은 오해가 누적되어 왔으며 이것이 또 상호불신과 증오를 더욱 조장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또 우리는 남과 북이 서로 무력으로 쳐들어 올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남-북 쌍방은 다같이 이러한 상반된 판단이 그릇된 오해에서 빚어진 환상이라는 점을 서로 해명했으며, 이어 어느 일방도 다시는 동족상잔의 전화를 불러일으키지 않겠다는 것을 명백히 약속했습니다.
우리는 한번 약속한 것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지키고야 마는 자랑스러운 한민족이라는 긍지를 우리 다같이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또 조국의 자주적 평화적 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과정으로서 남-북간의 상호 불신과 오해, 그리고 증오를 해소하고 그 대신 이해를 증진하고 신뢰를 조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에 전적으로 공감했습니다.
격의 없는 대화를 통해 확인된 이러한 상호공감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의 역사적이고도 획기적인 남-북 공동성명은 탄생되었습니다.
7·4 남-북 공동성명은 이렇게 남-북간에 합의된 기본정신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보장이자 담보인 것입니다.
7·4 남-북 공동성명의 발표로 우리민족의 앞길에는 뚜렷한 이정표가 마련되었습니다. 남과 북은 이제 7·4 남-북 공동성명 정신에 입각하여 새로운 남-북 관계를 착실하게 전진시켜 나가야 합니다. 민족공동의 장래 때문에 이 길은 기어코 성공의 길로 이끌어가야만 하겠습니다.
나는 이 시점에서 필연적으로 요청되는 것은 남과 북의 상호 성실한 이해, 바로 그것임을 뼈저리게 느꼈으며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당면하여 해결하여야 할 가장 선결적 과제임을 절감하였습니다.
단일민족으로서 동포애에 입각한 민족주체성을 바탕으로 우리의 통일문제를 해결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이 때문에 고도의 신중성과 상호 이해의 증진에 의한 점진적인 자세가 요청되고 있습니다.
우려는 지난 6개월 동안의 여러 가지 남-북 접촉과 교류의 과정이 말해주는 것처럼 올바르고도 견실한 방법으로 조국통일의 기반 조성을 위한 남-북 관계 개선작업을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지금 우리의 위대한 민족주체성과 민족자주역량을 세계만방에 과시하고 있는 중이며 세계는 또한 놀라움의 눈으로 우리를 주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번 두 번 째의 평양방문으로 북한의 지도층과 격의 없는 대화를 단속하는 가운데 남북 대화의 앞날에 새로운 자신과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같은 핏줄의 한 민족이기 때문에, 격변하는 국제경제 속에서 우리가 추구해야할 이해관계는 민족공동의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의 후손들은 다시 하나로 뭉쳐 호연하게 세계로 웅비하게 해주는 것이 민족사가 우리에게 부과하고 있는 막중한 과업이기 때문에 우리의 남-북 대화는 앞으로도 단속 생산적인 것이 될 것이며 또 성공하고야 말 것입니다.
오늘 이곳에 자리를 같이하신 평양의 동포 여러분! 멀지 않은 장래에 여러분도 언제든지 마음대로 서울을 방문할 수 있는 날이 곧 오게 될 것임을 나는 확신하며, 그때 나는 여러분들을 마음으로부터 환영할 것입니다.
남-북 조절위원회 공동위원장 이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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