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예사롭지 않은 바이든 ‘베팅’ 발언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52호 02면

2박3일 방한 뒤 7일 돌아간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의 ‘베팅’ 발언과 관련한 여진이 예사롭지 않다. 문제의 발언은 6일 바이든 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나온 것이다. 미국 측 통역은 “미국의 반대편에 베팅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이다(It’s never been a good bet to bet against America)”라고 옮겼다. 이를 놓고 한국이 대(對)중국 관계를 개선해온 데 대해 경고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됐다. 한국의 자주 외교를 놓고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도 들린다.

그러자 발언 당사자도 아닌 한국 외교부가 진화에 나섰다. 외교부 대변인실이 ‘해석이 잘못됐다’는 취지의 보도자료를 뿌리더니 7일에는 국회 예산결산특위에 참석한 윤병세 장관까지 나서서 해명했다. 윤 장관은 “미국식 구어를 잘 이해하지 못해 오해했거나 정확히 통역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한·미동맹의 강고함과 아시아·태평양 중시 정책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나온 것으로 ‘반대편’이란 단어를 사용해 잘못 이해됐다”고 덧붙였다.

외교부의 이런 해명은 궁색해 보인다. 그간 미국 쪽에선 대화의 의미가 잘못을 전해지는 걸 막기 위해 자신들이 고용한 통역만을 고집해 왔다. 한국 측 통역은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런 통역 전문가가 일상적인 표현을 엉터리로 옮겼다는 건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물론 정확하게 “반대편”이라고 통역하는 게 맞지 않을 수 있다. 문맥상으론 “미국이 아닌 다른 곳에 베팅하는 것” 정도가 적당해 보인다. 결국 그 의미를 어떻게 따져보든 한국이 중국 편을 드는 건 현명치 않다는 이야기 아닌가.

국가 정상급 인사들의 대화 중 표현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는 건 적절치 않다. 도리어 미국의 속내가 가감 없이 드러난 측면도 없지 않아 우리 외교를 추스르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그간 박 대통령은 일본을 제외한 미국·중국·러시아와 유럽 주요국을 돌면서 통상·안보 협력을 다지는 한편 신뢰외교를 선보여 왔다.

그러나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갈수록 날카롭게 부닥치는 동아시아에서 우리나라로서는 지혜로운 외교 노선을 찾아내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특히 오랜 혈맹인 미국과 최대 무역 파트너인 중국이 우리를 향해 선택을 요구할 때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는 숙고해둬야 한다. 요즘처럼 과거사·영토 갈등에다 항공식별구역을 둘러싼 한·중·일 분쟁 조짐까지 짙어지는 상황에선 더욱 현명한 처신이 필요하다.

멀리 내다보는 외교정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려면 내부적 합의가 선결조건이다. 박 대통령이 주창하는 신뢰외교의 알맹이가 뭔지, 그리고 뭘 추구하는지 좀 더 구체화해 널리 알려야 한다. 또 강대국들을 설득할 외교 원칙과 논리를 마련해 이를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가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그래야 바이든의 ‘베팅’ 발언과 같은 어색한 상황이 재발되지 않을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