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휴전」…쌍방양보의 폭|마무리 단계의 협상에 나타난 그 내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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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6일 「하노이」방송이 공개하고 이어 「키신저」특사가 시인한 미·월맹간의 월남전휴전협정 골자는 월남전의 수렁에서 발을 빼되 패배했다는 인장은 주지 않은 해결책을 모색한다는 미국 정책입안자들의 의도를 두드러지게 부각시기고 있다. 정치문제는 우선 뒤로 돌리고 휴전을 성립시킴으로써 미군을 완전철수 시키는 동시에 미군포로들을 되돌려 받은 후 『월남내의 군대문제』와 정치문제는 월남인 당사자들끼리 해결하도록 한다는 협정내용은 군사적 압력을 가중함으로써 『명예로운 철군』을 하겠다든 「닉슨」이 대통령의 공식 태도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실리외교의 명수인「키신저」는 결국 월남협상에서도 난처한 입장을 최선의 미국 측 실리 추구로 마무리 지으려고 노력한 모습이 역력히 보인다.
휴전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때 미국은 북폭과 기뢰 부설을 중단하고 휴전실시 2개월만에 연합군과 함께 전 미군을 철수할 것에 동의하고 있은 반면 월맹 측은 그들의 군대를 월남에서 철수하겠다는 상응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다.
미 국방성은 월맹군의 지난 춘계공세가 클라이맥스에 달했을 때 월남에는 11개 사단의 월맹군소이 활동하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월맹 측은 파리협상의 분쟁당사자로 참석하고 있으면서도 공적으로는 월맹군의 월남진입을 부인해 왔다. 따라서 월맹군의 철수 규정 없이 미군철수만을 협정 속에 명시한 것은 미국 측의 가장 중요한 양보인 것이다.
미국 측은 또 「인도차이나」전역에서 휴전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종전 입장에서 후퇴, 「라오스」및 「크메르」에서는 『외국군대의 철수 』를 요구하는데 그쳤고 이 두 나라의 분쟁당사자, 즉 「수바나·푸마」정권의 군대와 「파테트·라오」군, 「론·놀」군대와 「크메르·루지」군간의 휴전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다. 「키신저」특사는 이 조항에 관해 실질적으로 휴전을 규정한 거나 다름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특히 「라오스」의 경우「파테트·라오」군의 상당부분이 월맹군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첫 휴전협정에 명시하지 않은 것은 월남에서 만이라도 우선 휴전을 실시해 보자는 미국 측의 조바심을 드러내 주고 있다.
연정문제에 있어서, 월맹 측이 발표한 골자 속에는 「티우」가 완강히 반대하고 있은 3파 연정 수립이 규정되어 있다.
「키신저」특사는 이 점에 관해 이는 다만 총선을 관리할 하나의 행정기구로서 통치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며 이에는 미국의 주장대로 모든 세력이 동등하게 참가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티우」가 27일 이 기구 대신 유엔감시위원단으로 하여금 총선을 실시케 하자고 한 것은 이와 같은 미국 측 낙관적 해석에 강력한 회의를 던진 것이다.
이 부분에서 월맹 측의 유일한 양보가 눈에 띄는데 그것이 바로 「티우」의 연정참여 반대문제이다. 월맹 측은 「티우」의 연정참여반대를 내세우지 않은 반면 『미국은 월남내의 어떤 정치적 세력이나 개인을 지지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 친미적인 「사이공」정부를 강요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휴전이 실시되면 미국은 경제원조 이외의 모든 원조를 중단하도록 되어 있다.
이상으로써 쌍방 입장을 비교해 보면 미국 측에서 「티우」의 연정반대, 월맹군 철수, 「라오스」·크메르의 동시휴전 등 주장을 양보한데 대해 월맹 측은 「티우」의 거취에 관한 주장을 철회했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 측은 전후 월맹과 「인도차이나」전역의 재건을 위해 기여하겠다는 약속까지 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협상결과를 놓고 볼 때 「닉슨」이 대통령이 취임초기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온 여러 가지 형태의 확전 조치나 『월남화 계획』은 정당성을 갖기가 어렵게 되었다.
북폭확대나 기수봉쇄가 한계적 효과밖에 거두지 못했고 「라오스」「크메르」침공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온 데 비해 월맹군의 지난 춘계공세는 월남 안의 공산군점령지역을 확대시켜줌으로써 협상에 임하는 미국의 입장은 오히려 「닉슨」의 취임 초기보다 더 불리한 상태에 빠지게 했음을 이 휴전협정은 입증해 주고 있다.
「키신저」특사는 『이 정도의 휴전이라면 4년 전에라도 성취시킬 수 있었지 않은가?』라는 기자 질문에 대해 공산측이 군소·정치 문제를 분리검토하기를 거부해 왔기 때문에 선 군사, 후 정치의 타결책에 그들이 동의해 온 지난 8일 이전에는 어떤 형태의 휴전도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이 휴전협정이 11월7일의 미대통령선거 이전에 발표하는 것을 피한 듯한 미국 측 태도는 역시 그 내용이 지난 4년간의 전쟁계속을 미국국민들에게 정당화시키는 데는 불충분하다는 점을 「닉슨」자신이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10월30일자로 협정문 조인시한을 정하자고 주장한 것은 월맹이며 이 시간표를 세 번씩이나 수정해서 연기한 것은 미국이었다고 월맹자신이 비난했음) 월맹 측이 조급히 이 협정골자를 일방적으로 공개 한 것도 만약 선거일까지 휴전조인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재선된 「닉슨」이 양보 폭을 줄이려 들것을 예방하기 위한 월맹 측의 배수진이 아닌가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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